"알배기(배추속대)라도 한 포기라도 사서 겉절이라도 하려고요."
25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가락시장) 채소동 초입에서 배추 가격을 물어보던 박모(57)씨는 이 같이 말한 뒤 한숨을 쉬었다. 박씨는 "(배추가) 너무 비싸니까 물어보기도 싫다. 5만 원에 세 포기, 한 망이니까 안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장은 안 해도 (일반 배추보다 저렴한) 알배기라도 겉절이 해서 먹으려 한다"고 말했다.
김장철 대목을 앞두고 있지만, 가락시장 채소 도매상들은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배춧값이 고공행진하며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도매상 김모(61)씨는 "작년보다 4배 정도 배추값이 올라서 사람들이 살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며 "배추 한 망에 1만몇천 원 하던 게 지금 6만 원이다. 그것도 추석 지나고 좀 내린 거다. 예전엔 몽땅 갖다 놓고 팔았는데 지금은 45만 원치만 갖다 놓았다"고 말했다.
시장을 찾은 자영업자들의 얼굴에도 근심이 묻어났다. 가락시장 근처에서 17년째 족발·보쌈집을 운영 중인 이모씨는 이날 5곳을 돌아다닌 끝에 배추는 6포기만 사는 대신, 우거지를 한 박스 샀다. 이씨는 "우거지도 원래 만 원에 한 묶음 사왔었는데, 배추가 비싸지니까 이제는 2만 원에 사온다"며 "우거지국도 단골들만 준다"고 했다.
금(金)배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배춧값이 폭등한 건 올여름 기록적었던 폭염과 장마의 영향이 크다. 시장으로 유입되는 배추 물량 자체도 줄었다고 한다. 또 다른 도매상 김모씨는 "배추가 들어오는 양이 예전보다 30% 줄어들었다"며 "조그마한 텃밭을 얻어서 농사짓는 사람도 올해 배추가 하나도 안 됐다고 하더라. 날이 뜨겁고 비도 오니까 배추가 껍데기만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8월 하순부터 배추 공급 부족 현상이 해소될 것이라는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의 기존 전망도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지금 출하되고 있는 배추는 일모작이다. 늦게 심은 이모작은 알이 안차서 양이 없다. 김장을 껍데기로 담을 수 없지 않느냐"고 걱정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국내산 배추는 시기별로 출하량에 차이가 있다. 산간 고랭지 지역에서 생산되는 배추들이 지금 작황이 안좋은 것이고, 10월 중순부터는 상대적으로 기온이 내려가 공급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배추 가격이 치솟자 농식품부는 중국산 배추 수입, 출하장려금 지원, 대형마트 할인 지원 등을 추진한다며 가격잡기에 나섰다. 농식품부는 오는 27일부터 수입 배추 16톤을 들여온다는 계획이다.
또한 산지 유통인과 농협이 조기에 배추를 공급할 수 있도록 출하 장려금을 계속 지원하고 다음달 2일까지 대형마트 등에서 최대 40% 할인을 지원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배추가) 공급이 많이 되는 시기에 정부가 구매를 하고, 공급이 부족한 시기엔 방출하는 등 균형을 맞추는 정책을 할 것"라고 밝혔다.
장기적인 정책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김한호 교수는 "국내 생산 기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기상 이변 등 불가항력적인 요소가 많은데 농민이 안전망을 갖출 수 있게 주산지 등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