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 초 '더 내고, 조금 더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은 가운데 연금연구회가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개혁 방향성에 근본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단 보험료율 4%p 인상이 골자인 정부안(案)으로도 연기금 고갈을 막을 순 없다며 구조개혁을 비롯한 고강도의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시민사회계에서 "연금 자동 삭감장치"라고 비판하는 '자동조정장치'와 관련해선,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금연구회는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前 한국연금학회장) 등을 필두로 연금개혁의 최우선 목적이 '재정 안정'이라고 보는 전문가와 연구자 등이 모인 단체다. 보장성 강화를 역설해온 연대체인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는 줄곧 상반된 목소리를 내왔다.
연금연구회는 24일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에서 열린 '국민연금 다함께 살리기' 제6차 세미나에서 입장문을 통해 "연구회는 정부 연금개혁안의 세 가지 원칙인 지속가능성과 세대 간 공정성, 그리고 노후소득보장에 대해 원론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힌다"고 말했다.
또 "호혜적이지 못하고 특정 세대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제도는 결코 지속되지 못한다"며, 가장 큰 논란이 됐던 '세대별 보험료 차등 부담(인상)'을 두고 "적절한 접근으로 보여진다"고 평가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16년째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까지 순차적으로 올리되, 인상 속도는 세대별로 달리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20대는 매년 0.25%p씩 천천히, 50대는 1%p씩 더 가파르게 인상하는 방식이다.
연구회는 이에 대해 "세대 간 갈라치기, 세대 구분의 자의성, 재정안정 효과의 불확실성 등의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과거 오랜 기간 청년세대 및 미래세대에 대한 공정한 배려가 없어 왔음을 감안할 때 최소한 앞선 세대의 자기반성 차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제언"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2028년 40%로 낮아지게 돼 있던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올해 기준 42%로 유지하기로 한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한국의 초저출산과 인구 고령화 추세를 고려한다면 어느 나라보다 강도 높은 연금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연구회는 "통계청의 새로운 인구추계를 반영한 국민연금 재정추계에 따르면, 예정대로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더라도 이미 발생한 막대한 규모의 '미적립 부채'(지급하기로 약속한 연금액 대비 부족한 준비금)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19.7%로 걷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회 자체 추산으로 국민연금 미적립부채가 지난해 기준 1825조 원에 이른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들은 "정부가 발표한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2%'는 재정안정 달성에 턱없이 부족하다"며 "연금제도의 수지균형 상태에서 '보험료 1%p가 소득대체율 2%p에 상응하는 등가성을 가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득대체율 42%의 수지균형을 이루기 위해선 보험료율이 20.7%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의 미적립 부채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전제 조건을 적용해도 달라지지 않는 결론이라고 했다.
요율 인상과 함께 정부가 꺼낸 재정안정 카드인 '연기금 운용 수익률 1%p 인상'에 대해서는 "매년 수익률을 그 정도 올리려면 마이너스 수익률이 더 자주 예상된다"며 "현재의 포트폴리오 구성에서도 3년에 한 번씩은 마이너스 기금 운용 수익률이 전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불확실한 국내·외 경제 환경이 큰 변수임을 고려하면 향후 70년간 운용수익률을 높여 기금 소진시점을 늦추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희망고문' 또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게 연구회의 진단이다.
반면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 상황 등을 연동해 연금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 계획은 환영했다. 관련 순기능을 적극 알려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연구회는 "정부가 제안한 자동조정장치를 당장 도입하는 것이 아닌데도, 비판하는 집단에서는 '(연금액) 자동깎기 장치'라는 프레임을 설정해 맹비난하고 있다"며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70%가 도입했는데도, 우리는 수지균형 괴리가 큰 점을 들어 '시기상조'라 비판만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제도 도입 시 노인빈곤 심화는 물론, 현재의 청년세대가 주된 피해를 입게 될 거란 일각의 우려와는 정반대의 논지를 펴기도 했다. 국민연금 의무가입 상한 상향(현 59세→64세) 등과 병행한다면 오히려 자동조정장치가 '자동 유지 장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연구회는 "향후 10~30년간 노동시장을 개혁해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도입하면 청년층 신규고용과 고령층 계속고용이 동시에 가능하다"며 "추가 근로소득과 국민연금 추가가입을 통해 노후소득이 획기적으로 늘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들은 청년세대의 불안 해소를 위한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에 대해선 "지급보장은 선언적 문구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되레) 연금개혁 노력을 소홀히 하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라며 분명한 반대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