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헤즈볼라 페이저(pager·무선호출기) 테러'와 관련해 해당 대만 회사 제품의 호출기에 미리 소량의 폭발물이 삽입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1~2온스의 폭발물이 각 무선호출기의 배터리 옆에 삽입돼 있었다"며 "폭발물을 원격으로 작동할 수 있는 스위치도 내장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앞서 레바논 전역에서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사용하던 무선호출기 수백 대가 동시에 폭발해 11명이 숨지고 2,700명 이상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상자도 수백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져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헤즈볼라 대원들의 무선호출기에는 당시 지도부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메시지가 수신됐다. 하지만 메시지는 폭발물을 작동시키는 신호였다.
현재 SNS상에는 당시 폭발로 인한 피해 상황이 고스란히 올라와있다.
슈퍼마켓 내부 CCTV로 보이는 한 영상에는 사람들이 과일 카트 주변에 모여 있는 가운데 한 남자가 매고 있던 가방이 폭발하는 모습이 담겼다. 해당 남성은 곧바로 쓰려져 고통을 호소하며 비명을 질렀다.
병원에서 촬영된 또 다른 영상에는 손가락이 없거나 몸에 깊은 상처가 있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모습이 나온다.
전문가들도 "지금까지 각종 테러에 무선호출기 등이 표적이 된 적이 많지만, 이렇게까지 정교한 공격은 처음"이라고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앞서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지난 2월 "이스라엘이 위치 추적과 표적 공격에 활용할 수 있다"며 휴대전화 사용 금지를 명령했다.
이에 헤즈볼라는 통신보안을 위해 무선호출기를 도입했는데, 해당 호출기에 폭발물이 탑재되면서 헤즈볼라는 말 그대로 '시한폭탄'을 휴대하고 다녔던 셈이 된 것이다.
헤즈볼라는 대만의 '골드 아폴로'사로부터 3,000개 이상의 무선호출기를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헤즈볼라는 이를 레바논 전역의 회원들과 동맹 일부에게도 전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헤즈볼라가 대만으로부터 주문한 무선호출기는 레바논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폭발물이 넣어지는 등 조작됐다는 말이 된다.
헤즈볼라는 성명에서 "이스라엘에 전적인 책임을 묻는다"며 "반드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헤즈볼라 지휘관 푸아드 슈크르가 지난 7월 말 이스라엘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를 공습하면서 사망하기도 했다.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은 이번 폭발 사건을 "명백한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이스라엘측은 이번 사건에 해 그 어떤 언급도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이번 사태로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 했던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면전 위기가 다시 고조될 전망이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국경을 사이에 두고 무력 공방을 이어왔지만 중재와 협상 등으로 자제력을 발휘하며 전면전은 보류한 상태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테러를 '이스라엘의 확전 의지 표명'으로 평가하고 있어, 하마스 전쟁 장기화에 이어 중동 확전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