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외교안보 사령탑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주 중국을 방문해 중국 수뇌들과 연쇄 회담을 했다. 중국군 2인자와 시진핑 국가 주석과도 만났다. 대선을 두 달여 앞두고 미중 사이에 돌발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 임무였을 것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중국과의 회담을 모두 마친 뒤 베이징 미국 대사관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중국측에 "미국 대선에 간섭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표시를 했다"고 말했다. 군사적 도발 이나 정보 공작 등의 방식으로 표심을 교란시키지 말라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하지만 부당한 개입이 아니라면 중국이 미국 대선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베이징 회담에서도 중국측은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당선될 경우 대중 정책의 변화에 대해 질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와 관련해, "해리스 부통령과 일하면서 얻은 경험과 시각 그리고 그녀의 역할을 중국 측에 설명했다"고 말했다. 해리스 캠프를 대신해 대중 정책의 기본 방향을 전달한 것이나 다름없다.
설리번 보좌관은 기자들에게 해리스 부통령이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의 설계와 실행에 전반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현재 미중 관계의 이른바 '책임있는 관리' 방침에도 해리스 부통령이 관여했다고도 했다. 해리스가 승리하면 중국에게는 '바이든 정부의 시즌2' 가 될 것이라는 예고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 '관세 폭탄'에 시달렸던 중국이 조 바이든 행정부를 선호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바이든 대통령 시기에도 미국의 대중 강경정책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일본·호주 등과 동맹을 강화해 촘촘한 반중연대를 구축해 왔다. 또 기존의 안보 동맹을 경제, 이념 차원으로 확대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 견제에 유럽의 NATO까지 끌어들였다.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양국은 남중국해와 타이완해협을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의 전쟁과 달리 이 두 지역에서는 유사시 미국과 중국이 직접 부딪칠 우려가 있다. 이럴 경우 한국·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 지역이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남중국해의 인공섬에 군함과 미사일을 배치해 놓은 중국은 최근 필리핀과 수시로 충돌하고 있다. 필리핀은 미국의 73년 된 동맹국이다. 지난주 필리핀을 방문한 새뮤얼 퍼파로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필리핀 선박을 미 해군이 직접 호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군이 남중국해에서 중국 군함과 맞닥뜨리는 상황도 감수할 기세다. 이번 베이징회담에서도 설리번 보좌관은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합의의 실패를 입증이라도 하듯, 설리번 보좌관이 중국과 회담을 마치고 떠난 지 단 2일 만에 중국과 필리핀의 해경 선박은 남중국해에서 또다시 충돌했다. 지난 달 19일 이후에만 벌써 4번째다. 필리핀과 중국은 서로 상대국이 고의로 자국 해경 선박을 밀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성명을 내고, 필리핀의 합법적인 해상 활동에 대해 중국이 위험스럽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했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미국과 필리핀의 상호방위조약이 필리핀 해경 선박에 대한 공격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한번 더 확인했다. 이제 미국의 대응이 남은 셈이다.
타이완 문제도 여전히 위기 상황이다. 중국군의 2인자 장여우샤(张又侠) 공산당 중앙 군사위 부주석은 설리반 보좌관을 만나 엄포를 놨다. 장여우샤는 시진핑 주석의 군내 최측근으로 국방부장보다 서열이 높다. 중국 국방부의 보도 자료를 보면, 장 부주석은 "타이완 문제가 중미관계에서 넘어서는 안 될 제1의 레드라인"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보도자료는 거의 절반이 타이완 문제에 대한 반발로 채워져 있다. 중국은 지난달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타이완의 방공식별구역에 군용기를 진입시켰다. 타이완 공군기들의 맞대응 출격도 일상화 됐다.
미국이 중국과 군 지휘관 사이의 소통 채널 구축을 서두른 것도 이 때문이다. 장기화한 긴장이 우발적 군사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막으려는 것이다. 백악관은 퍼파로 미군 인도태평양 사령관과 중국군 남부전구 우야난(吴亚男) 사령원이 가까운 미래에 통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군 남부전구는 남중국해를 관할하는 부대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 설리반 보좌관은 미국, 필리핀, 중국 어느 나라도 남중국해에서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설리반 보좌관만의 희망 사항일지도 모른다.
타이완이나 남중국해에서 사태가 발생하면 트럼프 캠프는 외교의 실패라며 선거운동에 활용할 것이다. 대중 강경정책을 시작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유권자들의 반중정서에 불을 붙이면 해리스 후보가 유리할 것이 없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오는 11월 APEC과 G20 정상 회의를 계기로 양자 회담을 할 것이 유력하다. 하지만 두 회의 모두 미국 대선이 끝난 뒤에 열린다. 우선 미중 양국이 대선 이전에 정상간 전화 통화부터 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유효한 방법이다. 미국 대선에서의 중국 변수는 몇 주일 내에 성사될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의 통화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저자는 YTN 베이징 특파원과 해설위원실장을 지내는 등 30년 동안 언론계에 몸담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