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은 식민지 한국인 중에서 1, 2위를 다투는 갑부 반열에 올랐다. 김윤희 교수의 '이완용 평전'에 따르면 그는 68세에 죽었는데 죽기 1년 전인 1925년에는 친일파 민영휘에 이어 한국인 부자 2위로 기록됐다. 현금 보유액은 그가 최고였다. '경성 최대의 현금 부호'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이지용은 나라를 판 대가로 일본 백작이 되면서 10만 원을 받았다. 그런 사람이 하룻밤 도박에 11만 원을 쓰곤 했다. 나라 판 돈을 하룻밤에 탕진하곤 했던 셈이다. 1912년 12월에는 도박죄로 검거되어 2월에 태형 100대를 선고받았고 3월에는 중추원 고문에서 해임되었다. 도박죄로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13년간 중추원 연봉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을사오적, 경술국적, 정미칠적 등으로 대표되는 친일파들은 모두 왕족과 고관대작들, 오늘날로 치면 총리와 장관급 인사들이었다. 그리고 종이 몇 장에 도장을 찍어준 대가로 그들은 원하던 대로 평생 '호의호식'했다.
이들은 충성을 맹세한 일제로부터 돈도 받고 땅도 받고 술병도 받고 훈장도 받았다. 공짜로 일본 관광도 다녀왔다. 그렇게 나라와 백성을 팔아서 그들은 과연 얼마나 많이 벌었을까?
책 '친일파의 재산'은 30명의 친일파와 그들의 행적, 그들이 축재한 방식을 보여준다.
전쟁 없이 대한제국을 야금야금 무너뜨린 일본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대한제국 왕족들에게 거액의 돈과 작위를 주어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였다. 각 분야의 전문가 집단에도 손길을 내밀었다. 식민 통치를 위해 똑똑한 조선인 엘리트들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고종의 형 이재면은 대한제국이 멸망한 4개월 보름 뒤에 은사공채를 받았다. 조카인 이강(고종의 다섯째 아들·의친왕)과 더불어 가장 많은 돈을 받았다. 이완용이 15만원을 받은 데 비해 이재면과 이강은 83만원을 받았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2009)에 따르면, 당시 이재면이 받은 83만원은 현재 가치로는 "66억에서 830억원 정도로 평가된다. 해마다 발생하는 이자만 8억 3천만원에서 41억 5천만원에 달할 정도다.
저자는 책 머리말에서 "이 책이 굳이 '친일파의 재산'이라는 콘셉트를 앞세운 것은 친일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였음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김종성 지음 | 북피움 | 2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