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전공의 추가모집이 무산된 상황에서 전공의단체 대표는 내달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시범사업을 통해 진료지원(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등으로 전공의의 상당 비중을 채우겠다는 정부 방침에 '또 다른 저비용 인력 갈아 쓰기'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공백이 반 년째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는 PA 간호사를 전문의와 함께 대체인력으로 활용해 왔다. 보건의료 재난위기 '심각' 단계에서 간호사 업무범위를 자격별로 한시 확대한 데 이어 PA 간호사를 법제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정의 지원사격으로 이달 임시국회 통과가 무난히 예상됐던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 22일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향후 입법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2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의료도 마찬가지인데, 상급종합병원이나 수련병원들은 저비용·고효율 구조로 운영돼 왔다"며 "사실상 전공의들을 착취하면서 운영되어 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전공의를) 진료지원 인력으로 대체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결국 그것조차도 간호사란 저비용의 인력을 통해 병원이나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것으로 보여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해당 대책으로) 이득을 보는 건 (인건비 등을) 싸게 운영할 수 있는 정부, 병원장 정도다. 환자한테도 사실 이득이 되지 않고, 공급자인 의사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빅5' 등의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레지던트가 아닌 해당 진료과 교수를 만나고 싶어 하는데, PA 간호사로 이들의 요구를 충족하기엔 역부족이란 취지다. 의학적 판단을 토대로 어떤 의료행위가 필요할지 결정하는 교수와 환자 사이 가교 역할을 했던 전공의들에 비해 PA간호사는 제약이 더 많을 것이기에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란 게 박 위원장의 시각이다.
상급종합병원 의사인력의 40% 이상을 차지해온 전공의 공백을 메우고자 지금과 같은 재난위기경보 '심각' 단계에선 국내에서 의사 면허를 따지 않은 외국인 의사의 제한적 진료 허용을 검토 중인 정부 정책도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지금 국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의사들의) 자부심을 깨부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의대)교수님들도 현장을 이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의료현장을 지켜온) 자부심도 어떻게 보면 저비용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실질적으로 재원(임금)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자부심을 존중하면 그게 어느 정도 동기가 돼서 환자 진료를 할 수 있었던 건데 그런 구조 자체도 무너져 버렸다"고 부연했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소속이었다가 올 2월 사직한 박 위원장은 응급실 근무 당시 노출됐던 폭언·폭행, 의료사고 관련 소송 위험 등을 언급하며 "국가가 해결 의지가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의·정 갈등 장기화로 직격타를 입은 응급실 과부하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박 위원장은 전날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새벽에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응급실에 가려 했으나 22곳에서 거절당했다는 일화를 밝힌 것과 관련, "지금은 정말 생명에 직결되는 중증환자 위주로만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한 의료체계 전반의 인력 부족 및 '번아웃(탈진)' 심화에 따라, '골든타임' 내 응급실에 도착해도 적절한 배후진료(최종치료)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응급실이란 곳에서 모든 것을 다 치료해줄 순 없다"며 "(환자가) 뇌출혈이 있으면 신경외과, 심장 문제면 심장내과·흉부외과 등에 의뢰를 드리는데 그 전문 진료가 되지 않으면 사실 그 병원에서 진료(치료)가 힘들다고 보시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진단과 치료가 분리되면서 '응급실 뺑뺑이'가 벌어지는 배경을 짚은 것이다. 타 병원 이송이 여의치 않아 환자가 응급실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질 경우를 들어 "최종적인 책임은 응급실 의사가 져야 하니 그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대형병원에서도 응급실 운영 파행이 잇따르는 가운데 '9월 응급실 고비설'이 나오는 데 대해선 "지켜봐야겠지만 힘든 시기일 것 같기는 하다"며 우회적으로 동의했다.
응급의료 진찰료 가산 등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실효성은 크지 않을 거라고 봤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들은 (워낙) 박봉이었기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현장을 지키는) 교수님들은 돈을 더 준다고 버틸지 제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또 앞서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포함해 현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논의 등을 두고 "(의대 증원 발표 이후) 6개월 동안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추상적인) 제목들(만)을 나열하고 있다"며 "'이걸 할 거다', '저걸 할 거다' 하지만 예산 편성이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계획들은 아직도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공의들은 사태 초기부터 의료체계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안들을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안타까운 건 정치권에서도 이런 문제에 대해 개입을 해야 되지 않나 생각하는데 손을 놓고 있는 것 같아서 좀 아쉽다"며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도 이 사태에 나서서 어떻게 (의정 사태를) 해결해야 될지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