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네, 에어컨 온도 낮출게요. 네, 알겠습니다."
서울 구로구에서 고시텔을 운영 중인 김희선(가명·67)씨는 걸려온 전화를 끊자마자 한숨을 쉬었다. 고시텔 입주자가 에어컨을 세게 틀어달라고 요구하는 전화였다.
서울이 23일 기준 33일째 열대야가 이어진 가운데 김씨를 만난 20일에는 서울 최고기온이 35.4도까지 치솟았다. 오전 11시쯤 찾은 고시텔 안에서는 일부 남성 입주자들이 상의를 벗은 채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김씨와 만난 2평 남짓한 고시텔 사무실 책상에는 전기요금 고지서가 보였다. 지난 6월에는 76만 5천 원, 7월에는 100여만 원의 전기료가 청구됐다. 김씨는 이미 6월 분을 미납했다.
김씨는 밀린 전기세를 내기 위해 주 2~3회 오후 시간을 이용해 하루 4시간씩 국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김씨는 "고시텔은 방이 너무 좁아서 더위에 더 취약해 에어컨이 필수인데 열대야 때문에 밤새 틀어 놓는다"며 "살인적 더위에 사람이 살려면 에어컨을 틀어야 하는 건 맞지만 건물 임대료·관리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 8월에 전기세가 두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난 수준의 무더위는 냉방비 부담으로 이어져 소상공인들에게 직접적 타격을 주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여름 서울 폭염 일수(22일 기준)는 24일로 2018년(35일)에 이어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올해 서울의 열대야 일수도 지난해와 비교해 이미 3배를 넘어섰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17배 이상이다.(2014년 열대야 일수 2일)
전력 수요도 연일 기록을 깨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력 수요는 지난 20일 97.1GW으로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앞서 지난 19일 오후 5시 전력 수요는 94.7GW로 최고 기록을 썼지만, 1시간 만인 오후 6시, 95.6GW로 기록이 깨졌다. 하지만 이마저도 하루 뒤인 20일 갱신된 것이다.
서울 은평구에서 50평짜리 해외 식자재 마트를 운영하는 최상범(가명·30대)씨는 "7월에 전기료가 200만 원 이상 청구됐다"며 "날씨가 더워져서 냉장·냉동고 온도를 더 낮추고 있는데 8월 요금은 더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은평구에서 10년째 백반집을 운영하는 신영희(가명·70대)씨 역시 "봄에 비해 전기세가 2.5배 많이 나오고 있다"며 "부엌 안에서 요리할 때 불을 쓰니 나조차도 일할 때 너무 더워서 에어컨은 기본이고 서큘레이터, 선풍기 등을 모두 동원한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부가세 신고매출액이 연 6천만 원 이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전기요금 지원 사업을 운영 중이다. 지원 금액은 연 최대 20만 원이다.
소상공인들은 기록적 폭염으로 전기세 부담이 증가했기 때문에 지원 금액도 현실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씨는 "안 받는 것보다는 나은 것에 그치는 수준"이라며 "날씨가 더워서 손님도 줄었는데 전기세 부담은 올라 차라리 장사를 접는 날도 많다"고 한탄했다. 김씨 역시 "지원 금액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기후위기 등으로 앞으로 폭염 일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전기요금도 오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전기요금 지원 사업의 신청 대상도, 지원 금액도 늘려야 한다"며 "전기수요가 많은 하절기 요금할인, 소상공인 전기요금체계 개편 등 중장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