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8·15 광복절 복권(復權)에 반대하는 입장을 대통령실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단지 원론적인 반대가 아니라, 복권 방침이 정해진 뒤 작심하고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는 것이다.
반응은 엇갈린다. 한 대표 측에선 "원칙을 지키는 소신 행보"라고 주장한다. 반면 당 안팎에선 한 대표의 정치적 일관성을 문제 삼는 기류가 흐른다. 정치권 입문 이후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례처럼 명확한 단죄가 내려진 경우에도 우호적인 입장을 유지했던 것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결국 '복권 반대'의 명분보다 정치적 의도가 강조되는 방향으로 귀결되면서 친윤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한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차기 대권주자로서 자기 위상에 집중하고 있다는 해석과 함께 또 다시 당정 충돌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다른 한쪽에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김 전 지사의 복권을 먼저 요청했다고 밝힌 데 대해 대통령실이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하며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김 전 지사의 복권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韓 '김경수 복권' 왜 반대하나…"尹과 '차별화' 노린 대권 행보"
11일 취재를 종합하면 한동훈 대표는 최근 김 전 지사의 복권 여부를 두고 "정치인에 대한 사면이 함부로 이뤄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를 여러 차례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한 대표 측 관계자는 CBS 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한 대표가 김 전 지사의 복권을 두고 '국민이 보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의 뜻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며 "사면복권위원회 논의 전, 김 전 지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는 보도가 나온 시점 이후 등 여러 차례 전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민주주의를 훼손한 정치인을 사면하는 것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한 대표의 주장은 그가 법무부 장관 재직 시절부터 최근 총선을 거쳐오면서까지 남겨온 행보와는 배치된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앞서 한 대표는 법무부 장관 시절인 2022년, 윤 대통령의 첫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으로 김 전 지사가 거론되자 "현 시점에서 유력 정치인들의 사면복권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했고 결국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같은 해 말, 당시 한 장관은 김 전 지사와 이 전 대통령을 포함해 1373명에 대한 신년 특별사면을 주도했으며, 이 중 90%가 정치·선거 사범이었다. 당시 그는 직접 사면을 발표하면서 "이번 사면을 통해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과거를 청산해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모두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올해 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있으면서 그가 검사 재직 시절 징역 30년을 구형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예방한 뒤 "박 대통령께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라며 "굉장히 고초를 겪었고, 역사적으로 어떤 맥락이 있었는지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제가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당시엔 보수 통합을 호소한 행보로 해석됐다.
그러나 유독 김 전 지사에 대해선 강한 반대 의사를 공론화하면서 일관성의 문제가 지적됐다. 민주당 중진 박지원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을 구속·사면,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리신 분이 무슨 염치로 반대하는지 참 가소롭기만 하다"며 "5천만 국민이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한 대표는 반대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 대표의 반대 의견을 두고 당내에서도 발언 의도 그대로 순수하게 바라보진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차기 대권을 바라보는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각을 세우기 위해 '김 전 지사 복권 반대' 카드를 꺼내 든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당 실무급 관계자는 통화에서 "광복절 사면·복권의 경우 사전에 당대표가 원하는 대상자들에 대한 신청도 받고 이를 가지고 직접 협상을 하기 때문에 한 대표의 경우 법무부 장관 때 보다 권한이 막강하다고 봐야 한다"며 "그러면서도 의도적으로 반대 사실을 흘리는 것은 야당이 하는 짓이지 여당은 이러면 안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권 대상자에 대한 물밑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의견 조율이 이뤄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윤 대통령과의 이견을 외부에 노출했다는 취지의 비판이다.
한 전직 의원은 통화에서 "한 대표 자신은 윤 대통령과는 다르게 원칙을 지키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동기가 클 것"이라면서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공소 취소'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법과 원칙대로 하는 정치인 이미지를 취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韓 강성 우파 의식했나?…野 분열 이슈를 與 '집안 싸움'으로
또 한 대표가 반대 의사를 피력하는 데엔, 전당대회 압승을 가져다준 자신의 팬덤 내에서도 김 전 지사의 복권을 반대하는 여론이 크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긴 어려웠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또 보수 내 강성 지지층은 여전히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을 중대범죄로 바라보기 때문에 이를 겨냥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김 전 지사는 '드루킹 사건'으로 2021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고, 2022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복권은 되지 않아 2027년 12월까지 피선거권이 제한된 상태였지만, 이번 8·15 광복절 특별사면 때 복권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의 반대 의사로 당정 갈등이 다시 점화하는 양상이 되자 여권 내에선 야권 분열 이슈가 결국 여권 분열로 귀결되는 상황이 됐다는 자조섞인 비판도 제기된다. 김 전 지사는 향후 야권의 대권 잠룡으로 불리는 만큼 그의 복권 여부는 '이재명 독주 체제'를 흔드는, 야권 분열을 불러올 수 있는 사안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당 일각에선 "김경수 전 지사의 사면 복권 문제는 한참 전부터 야권이 분열할 수 있는 카드 중 하나였는데, 한 대표가 반기를 들고 나오면서 관심은 또 다시 당 대표와 대통령실 간 갈등으로 쏠리게 됐다"는 성토가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