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건은 어디서 시작해 김재규 사형까지 이어졌나[타임라인]

1979-08-09
YH사건(와이에이치무역여공사건)

1979년 8월 9~11일 가발수출업체인 와이에이치(YH) 무역의 여성 생산직 노동자들이 회사 폐업 조치에 항의해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 시위를 벌인 사건으로, 1970년대 정부의 노동자 억압을 통한 경제성장의 한계를 드러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이 몰락하게 되는 일련의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1979-10-16
부마민주항쟁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경상남도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반정부 항쟁 사건이다. 1970년대 유신체제 아래에서 쌓였던 정치·사회·경제·문화·종교 등 각 부문에 걸친 여러 모순의 폭발이었고, YH무역노조 신민당사 농성 사건과 함께 유신체제를 아래로부터 붕괴시킨 결정적인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1979-10-18
부산에 계엄령 선포 및 계엄군 투입
유신체제 반대 시위가 격화된 부산 지역을 대상으로 3번째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1979-10-20
마산 위수령 발동
위수령은 육군 부대를 군 시설 보호와 치안 유지를 위해 동원할 수 있도록 한 법령으로, 박정희 정권은 20일 낮 12시 마산에 위수령을 발동하고 공수특전단 등 군부대를 투입해 시위대를 진압했다.

1979-10-26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박정희 대통령 저격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과 경호실장 차지철을 권총으로 암살했다.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와 대통령 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의 대립을 결정적으로 증폭시킨 것은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의 저항, 특히 부마사태의 처리 문제로 알려졌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차지철의 강경노선을 채택했다.

1979-12-04
10·26 사건 재판 시작
사건 발생 39일 만인 12월 4일 오전 10시 당시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있는 국방부 청사 뒤편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 대법정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10·26 사건 이후 수사, 기소, 심리, 사형 구형까지 걸린 기간은 54일에 불과하다. 또한 당시 공판이 진행되는 도중 여러 차례 법정에 은밀히 쪽지가 전달된 사실로 인해 '쪽지 재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1979-12-12
12·12 군사반란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정승화 육군 참모 총장 등을 불법적으로 강제 연행하고 군권을 장악하면서 시작된 군사 반란 사건이다.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를 계기로 국가권력을 탈취하고 쿠데타 일정을 마무리했다.

1979-12-20
10·26 사건 1심 판결 선고
10·26 사건 1심 판결 선고

1980-01-22
10·26 사건 항소심 재판 시작
10·26 사건 항소심 재판 시작

1980-01-28
10·26 사건 항소심 판결 선고
10·26 사건 항소심 판결 선고

1980-03-06
박흥주 대령 사형 집행
박흥주 대령 사형 집행

1980-0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비상계엄 전국 확대

1980-05-18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광역시(당시 광주시)와 전라남도 지역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신군부를 중심으로 한 집권 세력은 공수부대 중심의 무력 진압을 진행했고, 무차별적인 진압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1980-05-20
사건 상고심 재판, 대법원 판결 선고
사건 상고심 재판, 대법원 판결 선고

1980-05-24
김재규 및 10·26 사건 관련자 5인 사형 집행
김재규 및 10·26 사건 관련자 5인 사형 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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