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의대 교수들 "사직전공의 자리 비워둘 것"…선발 보이콧 시사

"작금의 고난, 종결後 지원해야 새로운 세브란스人으로 환영 가능"
앞서 세브란스, 전공의 약 94% 무더기 사직처리…'결원 115%' TO신청
"병원에 넘긴 법적·재정적 책임, 국가의료붕괴 책임 전적으로 정부에 있어"

지난 6월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환자들이 출입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올 9월 수련에 들어가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일정이 22일부터 시작된 가운데 전공의의 실질적 교육·지도를 담당하는 의대 교수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교수들은 사직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미복귀 전공의들의 '일괄 사직처리'에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병원 측이 충원을 위해 전공의 모집을 강행하더라도 장외투쟁 중인 기존 '제자'들을 외면한 채 신규 전공의의 교육을 맡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용인세브란스병원 등을 수련병원으로 둔 연세대 의대 교수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전공의 일괄 사직처리와 하반기 모집에 즈음한 연세의대 교수 입장문'을 내고 "정부는 전공의를 사직케 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국 정부의 명령대로 세브란스 전공의(인턴·레지던트)는 일괄 사직처리됐다"며 "병원은 내년 이후 전공의들이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하반기 가을턴으로 정원(TO)을 신청했지만 우리 교수들은 이 자리는 '우리 세브란스 전공의를 위한 자리'임을 분명히 선언한다"고 못 박았다.
 
사실상 하반기 전공의 채용을 '보이콧'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한 것이다.
 
비대위는 "만에 하나 정부의 폭압과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병원이 사직 처리된 우리 전공의들의 자리를 현재 세브란스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이들로 채용하게 된다면, 그것은 정부가 병원의 근로자를 고용한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우리 연세의대 교수들은 작금의 고난이 종결된 후에 지원한다면 이들을 새로운 세브란스인(人)으로 환영할 수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학풍을 함께할 제자와 동료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세브란스 전공의가 사직했더라도, 세브란스는 그들의 자리를 비워두고 그들이 당당하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그들을 지원하고 지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빅5' 속한 세브란스병원은 정부가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제출 마감일로 제시한 지난 17일까지 올 3월 기준 임용대상자 677명 중 93.6%에 해당하는 634명(임용포기 285명 포함)이 '무더기 사직' 처리됐다고 보고했다.
 
병원 측은 사직자 대비 115%인 729명을 하반기 모집 TO로 신청한 상태다. 기한 내 결원 규모를 보고한 수련병원 110곳에서 사직 처리된 전공의는 7648명으로 전체(1만 3531명) 대비 56.5%에 달한다.
 
의대증원을 둘러싸고 의정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하반기 전공의 모집과 의사 국가시험 접수를 하루 앞둔 2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울러 비대위는 "정부는 여전히 문제 해결에 이르는 길을 벗어나 있다"며 "지난 5개월 동안과 마찬가지로 책임을 넘기고 (정부 측의) 과오를 가리려는 간계만을 내놓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번에는 겨냥한 대상이 의료인이 아니라 전공의들이 수련을 받는 의료기관을 책임 전가의 도구와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만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부연했다.
 
정부가 올 2월 이탈한 전공의들의 사직서 수리시점을 앞서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을 철회한 '6월 4일 이후'로 명시한 것을 두고는 "법률적, 고용상의 부담과 책임을 병원에 전가하려는 것"이라며 "전공의 의지를 병원이 무시하도록 강요하고, 혹시라도 사제의 정(情)으로 '2월 사직'으로 처리하면 이 사태에 대한 법적 책임이 병원에 넘어가도록 획책한 것"이라고 봤다.
 
이를 통해 교수와 전공의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병원과 교수 또는 전공의 내부 분란만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비대위는 "그 결과를 고려하지도 않은 채 수련병원들에게 전공의 사직을 처리하고 하반기 모집정원을 신청하지 않으면 내년의 전공의 TO를 없애서 전공의가 내년 3월에 돌아올 자리조차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공의의 안전 복귀와 의료정상화를 위한 병원 및 교수의 선의를 '악용'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들은 "복귀할 의사가 있지만 눈치가 보여 복귀 못하는 사직처리 전공의는 대규모 채용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대형병원에 신입사원 공채처럼 지원하라는 것"이라며 "끈질기게 정부의 잘못된 정책의 철회를 요구하는 전공의를 가르고 굴복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9월 수련 특례'를 적용한 가을턴 모집 자체가 사태 초기부터 '의대 증원 백지화'를 주장해온 전공의들을 길들이려는 목적이라는 취지다.
 
마지막으로 연세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병원에 넘긴 재정적·법적 책임과 국민·환자의 건강상 피해, 국가의료붕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며 "더 이상 꼼수와 헛된 수작을 부리지 말고 용기 있는 선택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전공의 및 학생과 직접 대화에 나서 젊은 그들을 복귀시켜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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