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혈주의를 깨는 시도"
8월 1일 퇴임하는 김선수 대법관이 변호사 시절 대법관 후보로 이름을 올릴 때마다 나온 세간의 반응이다. 그는 진보 색채가 뚜렷해 정치 편향 논란도 항상 따라붙었지만, 판사나 검사를 거치지 않은 순수 재야 변호사로 주목받았다. 1980년 이후 제청된 대법관 중 '1호 재야' 대법관이다.
간혹 검사 출신 인사가 대법관으로 임명되기도 했지만, 대법관은 사실상 판사 출신이 도맡았다. 변호사·교수 중에서 대법관이 되더라도 판사 경력을 거친 인물들이다. 일종의 '불문율'과 같다. 그래서 '순혈주의',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런 사법부의 분위기 속에 김 대법관 임명은 파격이었다.
'순혈주의를 깼다'는 평가를 받은 김 대법관이지만, 대법관직에 오르기까지 순탄치 않았다. 2015년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김 대법관을 후보로 추천했지만, 최종 후보에서 제외됐다. 당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대법관 후보자로 추천된 외부인사, 즉 변호사들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후보추천위는 외부인사인 심사대상자 중 대법관으로서의 자질 및 능력과 함께, 청렴성·도덕성 등 모든 자격요건을 갖춰 대법관으로서 적격인 후보를 찾기 어려워 부득이 법관 중에서 후보자를 추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은 대한변협의 반발을 샀다. 당시 대한변협은 성명을 내고 대법원이 여러 차례에 걸쳐 국민의 신뢰를 얻는 사법부가 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번에도 판사 순혈주의를 고수해 권위적인 사법부, 국민의 여망을 외면한 사법부가 되고 말았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법관 인선 작업이 시작되면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대법원 구성을 변경하고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특히 이번 대법관 인선은 1호 재야 변호사 출신의 대법관 후임도 포함돼 더욱 관심을 받았다. '재야 몫'을 인정해 순수 변호사 출신이 포함될지 여부다.
하지만 결국 최종 임명 제청은 현직 판사 3명이 됐다. 2018년 재야 출신 대법관을 우여곡절 끝에 배출했지만, 명맥을 잇지 못하고 곧바로 끊긴 셈이다.
김 대법관이 대법관 후보자로 처음 이름을 올린 2017년 6월 대한변협은 "순수 재야 변호사라야 법원, 검찰이 아닌 일반 국민의 관점에서 우리 법 제도의 현실과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며 "사법개혁은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로부터 시작돼야 하고 순수 재야변호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라면서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순수 재야 출신 변호사인 김 대법관이 대한변협의 기대만큼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공과(功過)' 평가는 별개로 이뤄져야 한다. 다만 어렵게 첫발을 내디딘 순혈주의 타파 시도가 6년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점은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