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 이응노 120주년 기념전…'취야' 연작 2점 최초 공개

고암 이응노 '취야-외상은 안뎀이댜' 1950년대. 가나아트센터 제공
고암 이응노(1904~1989) 탄생 120주년을 맞아 두 달간 고암의 30대 시절부터 말년까지 작업을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26일 개막한 고암 이응노 탄생 120주년 기념전 1부 '고암, 시대를 보다: 사생(寫生)에서 추상까지'가 7월 28일까지 열리는 데 이어 8월 2일에는 '군상' 연작에 집중한 2부 전시가 개막한다.

고암의 예술세계는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와 전후 유럽 미술의 영향 속에서 다채롭게 변모했다. 1부 전시는 작품에 녹아든 고암의 시대 인식과 그가 일평생 동양화의 현대화를 추구하며 이룬 예술적 성취를 조명한다.

문인화의 전통을 넘어 삶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 1930년대 사생을 시작으로 1950년대 반(半)추상 실험을 거쳐 프랑스로 건너간 후 시도한 콜라주와 문자 추상, 옥중 만든 밥풀조각까지 아우른다.

1950~60년대 미공개 작품도 대거 출품한다. 특히 1950년대 대표작으로 꼽히는 '취야' 연작 2점이 주목된다. 고암의 50년대 화풍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세 사람이 앉아 술을 마시고 그 뒤로 여러 인물 군상이 배경으로 묻히듯 그려진 '취야' 연작의 기본 구도를 따른다. 이중 '취야-외상은 안뎀이댜'는 중앙에 웃는 눈의 돼지머리가 걸렸고 왼쪽 끝에는 '외상은 안뎀이댜'라고 고암이 직접 쓴 글씨가 남아 있다.

고암 이응노, 군상-옥중조각, 1967~69, 가나아트센터 제공
일본 동경 유학을 마치고 해방 무렵 서울로 돌아온 고암은 일제강점 이후 도시의 생활상을 화폭에 옮겼다. 이 무렵부터 고암의 화폭에 시장의 상인, 지게를 진 노인, 화로 앞의 여인 등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했다. 1950년대 한국전쟁을 겪은 뒤로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서민의 고단한 삶을 주로 그렸다.

"1955년 그린 취야는 자화상 같은 그림이었지요. 그 무렵 자포자기한 생활을 하는 동안 보았던 밤시장의 풍경과 생존경쟁을 해야만 하는 서민 생활의 체취가 정말로 따뜻하게 느껴졌답니다. 역시 나는권력자보다는 약한 사람들, 함께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 움직이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뭔가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쪽에 관심이 갔고, 그들 속에 나도 살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이응노, 박인경, 도미야마 다에코와의 대담 中)

고암 이응노, 모락산-안양교도소에서, 가나아트센터 제공
고암이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대전, 안양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옥중에서 그린 풍경 2점도 처음 공개한다. 생전 "수감 생활 중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는 그는 바깥과의 단절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견디기 위해서라도 뭔가를 그려야 했다.

흔히 '밥풀조각'이라고 부르는 옥중 조각은 밥알을 조금씩 모아서 신문이나 종이조각과 뭉개고 섞어 만들었다. 1967년부터 1969년까지 한정된 기간 만들었기 때문에 수량이 적은 편이고 재료적 특성으로 상태가 취약해 자주 공개하는 작품은 아니다.

주묵(朱墨)으로 그린 1988년작 대나무 그림 1점도 처음 선보인다. 화폭의 왼쪽 하단에서 오른쪽 위를 향해 솟아오른 대나무의 모습에서 활달하고 분방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 작품을 놓고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부침을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고암 선생님, 왜 하필 붉은 대나무를 그리셨습니다?"라고 묻자 고암이 되레 "그럼, 대나무가 검은색입니까?"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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