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연구중심 대학원大 경북대 ·· "제2의 정성화 김순권 산실" (계속) |
#1. 2003년 완성된 인간게놈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네안데르탈인 게놈프로젝트가 진행된 지 4년 만에(2010년) 네안데르탈인 게놈의 99.84%가 유전적으로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와 동일하다는 결론이 과학계에서 나왔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인류기원설을 규명할 판도라의 상자가 유전과학을 통해 활짝 열린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 중심에는 독일의 세계적 자연과학연구소 막스플랑크협회가 있다. 네안데르탈인 프로젝트를 불과 4년 만에 마무리 지은 진화유전학자 스반테 페보가 바로 막스플랑크협회 산하의 진화인류학연구소장이다. 그는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막스플랑크협회에서 나온 위대한 과학적 성과는 부지기수다. 막스플랑크협회의 누적 노벨상 수상은 32개나 된다. 자연과학분야에서는 세계 1위를 달리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연구집단이다.
막스플랑크 처럼 기능하는 연구원 만든다
경북대는 3월 교육부에 제출한 글로컬대학 혁신기획서에 막스플랑크협회 같은 '기초학문융합연구원'을 만들어 자연과학,인문학,사회과학 융합연구를 진행, 연구문화를 부흥시키겠다는 비장의 카드를 담았다. 참여 연구기관으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과 한국국학진흥원 등 4개 기관을 제시했다.
이 대학에는 현재 130여개의 연구소가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다. 하지만 현 시스템으로는 각기 정해진 연구목적에 매몰되다 보면 다학제간 융합연구 진행이 어렵다는 판단에서 융합연구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했다. 개방공모로 노벨상급 석학을 원장으로 초빙하고 연구력 상위 20%교원 배치, 전임연구원 채용(박사후연구원 등), 산업체 우수연구자 유치, 대학원생 논문 공동지도 등의 연구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연구원 참여 '학생연구원'에게는 선연구-후교육, 박사 패스트트랙 시행 등의 연구조건을 갖춰주고 시드연구비 블록펀드 지원, 전임교원 대비 연구원 비율 2명 등 글로벌 수준의 연구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담았다.
고립된 섬과도 같은 연구시스템을 강화된 융합연구시스템으로 대체해 연구중심대학으로 대전환하겠다는 것이 이 학교가 100년 200년을 내다보며 만든 미래비전이다. 이는 글로컬 전략 차원에서 나온 대응책의 수준을 넘어선다.
올해로 개교 78년을 맞은 경북대는 '연구'와 '우수인력 양성'이란 투트랙 목표 아래 LG 가전왕국과 반도체신화를 이뤄내며 70,8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우수인력 공급의 중심축으로 기능해 왔지만, 양적경쟁에 몰두하는 사이 '연구와 기술개발 및 산업화, 이에 복무할 인재양성'의 자체 벨류체인을 구축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지난달 말 치러진 총장선거의 후보자 9명 모두가 연구중심대학으로의 전환을 얘기할 정도로 변화혁신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학교 전체로 확산돼 있다.
"하버드가 유명한 건.. 우수 연구성과 때문이죠"
#2. "하버드의대가 왜 그렇게 유명하겠어요 다른 대학들처럼 수술 잘하고 환자를 잘 돌봐서 그런가요 아니에요. 하버드가 갖는 공신력은 그 대학이 만들어내는 우수한 연구결과 때문입니다.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하버드 논문이 다수 게재.인용되고 후행 연구의 기반이 된 것, 그것이 오늘의 하버드를 만든 겁니다. 그러면 우수 대학원생들이 오지말라고 해도 몰려올 겁니다"
총장 후보자로 경선에 나섰던 하성호 경영학부 교수의 진단에는 이제 양적성장에서 질적성장으로 전략을 바꾸자는 의도가 담겼다.
지금껏 경북대의 전략적 목표지점은 '아이들 교육 잘 시켜서 기업에 좋은 인재를 보내주자'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성과도 없지 않았다. 홍원화 현 총장 재임 중 학교재정 1조1356억원(2023년)을 기록 '대학재정 1조원 빅4'에 진입했고 모집정원은 5009명(2024), 5269명(2025)으로 전국 1위다.
하지만 이 학교는 여전히 수도권으로 학생이탈(고교생)과 경쟁력 하락을 걱정하는 처지다. 엄청난 외형성장의 결과에 비춰볼 때 뼈아픈 대목이다. 교수 교직원 학생 등 학교 구성원들이 미래비전에 목말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시급한 과제는 '연구역량 강화'.. 구성원 여론조사
경북대가 지난 2월 리시처코리아에 의뢰해 글로컬대학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교구성원들 모두가 최우선 과제로 '연구역량 강화'를 꼽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의 응답자 수는 1185명이었다.
구성원 조사를 바탕으로 도출해 낸 실행과제가 융합연구소 설립과 대학원 중심 대학이다. 수도권 더 나아가 세계유수 대학과 진검승부를 펼치기 위해 기초학문융합연구원을 비롯, 첨단기술, 바이오 등 3개 '융합연구원'을 설립.가동할 계획이다. 3개 연구소는 분야별 연구를 이끌어 나갈 '선도 연구 플랫폼'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르면 8월 늦어도 9월 원장 공모절차에 착수하고 1개 연구소 당 20여명의 연구원을 확보하는 한편 램프사업과 연계해 박사후 청년연구자를 대량 유치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들에게는 신진교수들이 매칭된다. 연구소 설립 초기 예산으로 15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경북대의 연구역량도 부족하지 않다. 1300여명의 국내외 박사(교수)로 구성된 두뇌집단이 효율적 연구거브넌스와 맞물리면 엄청난 파괴력을 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연구중심 대학원대학.. 제2의 정성화 김순권 산실될 것
생명공학부 이현식 교수는 지난 20일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학교의 뛰어난 연구결과를 얘기해달라는 질문에 "1990년대 수퍼옥수수를 개발한 김순권 박사의 연구결과는 북한을 비롯한 최빈국들의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글로컬사업을 통해 연구의 체질개선이 이뤄지면 트랜드를 따라거거나 연구비를 타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인류의 혜택'으로 이어질 제2의 정성화, 제2의 김순권 사례들이 잇따라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중심대학 전환의 또다른 방편은 대학중심→대학원중심으로의 전환이다. 경북대의 2024년 기준 재학생 대비 대학원생 비율은 28.2%로 경쟁대학의 40%대보다 크게 낮다. 이를 단계적으로 43%까지 늘리고 대학원생 유치 방편으로 △전일제 박사과정 등록금 전액 지원 △학석사 학점동시인정제 도입 △전공이동형 학석사연계과정 시행 △박사과정 복수학위제 △대학원 해외유학생 3천 명 유치 등의 유인책을 마련했다.
교수들의 연구환경 조성책으로 △다년집중연구년제(2년 이상) △정년심사시 해외우수 연구자 평가제 △상위 5% 교수 정년연장, 연구비 지원 △교수들의 수업 뺑뺑이 방지(책임시수 6학점 조정) △신임-퇴직교수 멘토링 시스템 구축 등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제도를 손질한다.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제는 교원업무의 중심을 수업에서 연구쪽으로 전환하겠다는 대학 측의 확고한 의지가 드러난다. 글로컬대학을 계기로 연구중심대학이란 테마가 부각됐지만 대학내부에서는 변화.혁신에 대한 에너지가 분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