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책임을 전가하거나 인간과 인류에게 그 죄를 떠넘기는 자유주의적 세계관, 탄소 상쇄와 탄소 포집 기술로 기후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녹색 자본주의 낙관론, 기후위기를 인구증가 문제로 환원하는 멜서스주의, 세계가 곧 망할 것이라고 공포를 조장하는 파국론, 기후위기를 사회 체제와 무관한 독립적인 문제로 여기는 기후 결정론에 대한 비판.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는 인류가 당면한 기후위기와 그 책임 소재와 무수한 해결책 뒤에 숨은 민낯을 끄집어 낸 새로운 시각의 기후·생태위기 보고서다.
감춰지거나 모른 척해온 자본주의의 어두운 진실들을 객관적 수치로써 드러내는 동시에, 남반구와 선주민 지역을 중심으로 한 기후정의운동의 역사가 엄연히 대안의 서사로 우리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풍부한 사례로써 보여주고자 한다.
"한국을 비롯한 부유한 북반구 시민들은 기후 집회에 나가 '지구가 죽어간다' '지구를 살리자'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인다. 그 구호를 볼 때마다 한 움큼의 의뭉스러움이 치받쳐 오르곤 한다. 과연 그 지구는 같은 지구일까? 사과와 커피 값을 걱정하는 한국의 시민과 저기 아프리카에서 고행길을 걸으며 물을 뜨는 소녀에게 지구는 같은 공간일까?" -23쪽
저자는 자본과 부자들에게 탄소 배출의 압도적 책임이 있는데도 정부는 탄소중립을 위해 개인적 실천이 중요하다며 힘을 합치자고, 이메일 지우기, 쓰레기 줍기, 재활용, 전깃불 끄기, 텀블러 사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개인의 선의는 기후위기로부터 우리를 스스로 구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재생에너지로 배터리를 바꾸면 행성 위기가 해소되리라는 것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며 자동차, 육류, 패스트 패션, 전자기기, 단일 작물 등 추출주의(Extractivism)에 기반한 축적 모델이 지속되는 한. 자연과 인간의 노동력을 귀한 줄 모르고 마구잡이로 흡수하는 추출주의와 제국적 생활양식은 우리의 삶을 재생산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자본주의는 물질에 각인된 고향의 기억을 지우고, 뿌리의 궤적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억만장자들, 자본주의가 가져온 생태계 파괴를 지적적한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 모두에게 넉넉히 품을 내어주던 숲과 공유지가 울타리로 봉쇄됨으로써 접근하기 어려운 희소재가 된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공유가치를 희소가치로, 풍요를 결핍으로, 나눔을 독점으로 변질시킨다는 것이다.
자연을 '공유성'이 아니라 '희소성'으로 접근하게 되면, 생태 파괴는 인간의 나쁜 본성이나 인구 과잉 문제로 환원되고, 이 점에서 제인 구달을 비롯한 다수 학자들의 인구 문제 지적은 틀린 방식이며 아울러 인종과 지역에 대한 차별주의를 내포한다는 점에서도 공정하지 못한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오늘날 에코파시즘 역시 기후생태 문제를 인구 증가의 문제로 환원하는 담론들에 기생하며 그 기세를 확장해왔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근본적인 기후위기, 생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색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소비주의의 달콤한 쾌락에 견줄 대안으로서의 쾌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는 흔히 소비주의를 비판할 때 검소, 절제, 연민을 앞세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왜 당신들은 동참하지 않냐고 날을 세우거나, 기껏 공정 무역과 착한 소비를 하자고 종용한다"며 "하지만 이렇게 개인의 죄의식을 닦달하는 방식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첫째는 그것이 대안적 정치를 상상하지 못한 채 '채식' '저탄소' '유기농' 같은 브랜드 소비에 강박된 시장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한계 때문이고, 두 번째는 윤리적 죄의식이 소비주의의 쾌락을 결코 상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적 욕구와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시장에서 공급하는 재화와 서비스에 의존하는 경로를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절제에 대한 호소가 아니라 다른 강력한 쾌락, 소비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쾌락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의 생활양식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동차와 주차 공간을 대폭 줄이고 대중교통을 강화하는 것은 도시를 자본이 아니라 다시 사람에게 되돌려준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아이들은 자전거를 끌고 거리로 나오고, 사람들은 다시 광장을 되찾을 것이고, 떠났던 새들도 돌아와 둥지를 틀 것이라고 말한다. 사유화되고 상품화된 도시에 공공성이라는 거름이 뿌려지듯.
또한 금속 채굴을 위해 온 세계를 덜 파헤치니 당연히 생태계가 덜 파괴되고 해당 지역의 선주민들도 각자의 삶을 평화롭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태사회주의, 탈성장을 위해 오늘날 기후운동은 저항과 대안 못지않게 차가운 분석과 뜨거운 조직 과정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지금이 그 행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저항의 춤'을 춰야 할 때라고.
저자는 지구에 처해진 현재의 난국과 기후 난민의 비극을 다층적으로 분석하며 새로운 시각에서 질문을 던진다.
이송희일 지음 | 삼인 | 5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