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의 한 배터리 제조 공장에서 불이 나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지만 '리튬 배터리 화재'의 특성 상 물을 뿌리는 방식의 진화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배터리가 타들어가는 걸 기다려야 해 소방관들의 내부 진입과 수색도 지연됐다. 리튬 등 금속성 물질 화재 대응의 취약성이 드러난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소방당국은 24일 오전 10시 30분쯤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단에 위치한 아리셀의 리튬 1차전지 제조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불이 난 곳은 11개동 가운데 2층짜리 3동 공장 2층이다. 1층 노동자들은 불이 나자 즉시 대피했지만, 2층에 있던 직원들 다수는 미처 피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리튬 배터리 완제품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배터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목격자 진술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은 즉각 현장에 도착했고 공장 내부에 수십 명의 직원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물을 이용한 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했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 소방관들의 현장 진입도 늦어졌다. 결국 공장 내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와 수색도 지연됐다.
이처럼 대응이 어려웠던 이유는 물이 닿으면 불을 키우는 '리튬 1차전지 화재'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리튬전지는 1회용인 1차전지와 충전이 가능한 2차전지로 구분되는데, 리튬의 특성상 물이 닿으면 수소가 발생한다. 발생한 수소는 산소와 만나 불이 오히려 커지게 된다.
이렇다 보니 물을 이용한 화재 진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리튬 전지 화재 진압에 쓸 약제가 없어 특수 모래로 진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국제대학교 소방방재학과 장창현 교수는 "건조한 모래로 꺼야 하는데 유지·관리가 힘들다"며 "외국은 금속 화재에 대한 약제를 개발했지만, 우리나라는 금속 화재(D급)에 대한 언급이 없다. 우리나라는 물로 안 되니까 건조한 모래 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소방당국 역시 마른 모래와 팽창 질석 등으로 대응했지만 역부족이었고, 결국 공장 내 3만 5천 개에 달하는 1차전지가 거의 다 탈 때까지 내부에 진입하지 못했다. 소방당국은 1차전지가 다 타버린 오후 3시 5분쯤부터 내부에 진입해 본격적인 수색에 나설 수 있었다.
수색에 나선 소방당국은 공장에 출근한 근무자는 102명이며, 23명(외국인 20명, 한국인 2명, 미확인 1명)이 실종 상태라고 밝혔다. 이중 오후 4시 기준 사망자는 9명이다.
현재로선 리튬을 포함한 금속성 물질 화재에 대응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이호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소방기술로는 리튬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불을 끄는 완벽한 방법을 못 찾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에선 금속화재에 대응하기 위해 팽창 질석에 액체를 담은 소화 약제가 있다고 한다. 장창현 교수는 "광물질이나 유리조각을 가루로 낸 것, 모래가 기타 소화 약제인데, 이것으로 금속 화재를 끄려면 금속에 완전히 도포해야 한다. 밀가루처럼 도포해야 다시 발화가 안 된다"라며 "팽창 질석에 액체를 집어넣은 것이 있다. 외국에서 개발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