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10월 28일, 서울에 머물던 이중섭(1916~1956)은 통영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전해준 양피점퍼를 입고 열심히 그림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글과 그림으로 담아 아들에게 보냈다.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한 이중섭은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생전 100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의 편지들은 편지화라는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이중섭은 아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같은 그림과 글을 담은 편지를 두 개 제작해 태현, 태성에게 각각 보냈다. 두 아들을 공평하게 대하려는 아버지 이중섭의 섬세한 배려가 느껴진다. 이번에 공개하는 편지화는 태현을 위한 편지다. 태성을 위한 편지는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
이중섭 가족에게 편지화는 삶의 버팀목이 됐다. 이중섭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를 보내며 달랜 것처럼 가족들은 편지를 읽으며 아버지 혹은 남편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편지화는 가족애뿐 아니라 이중섭과 친구들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시연 서울미술관 큐레이터는 "외롭고 힘든 피난 시기였지만 이중섭은 7개월여 동안 통영에서 지날 때 친구들의 지원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며 "유강열(공예가)을 비롯한 통영 친구들이 이중섭에게 양피점퍼를 선물했다는 사실이 이 편지화의 내용으로 처음 확인됐다"고 말했다.
최고급 한지인 감지 위에 그린 신사임당의 '초충도' 10점, 천경자가 둘째딸을 모델 삼아 그린 여인상 '청혼', 김기창이 생전 분신처럼 여겼던 '태양을 먹은 새', 수탉의 씩씩하고 굳센 기운을 생동감 넘치게 담아낸 이응노의 '수탉', 1천호 대작인 이대원 '배꽃'. 유영국 '움직이는 산' 등을 볼 수 있다.
"깊은 늪에 빠져 있는 저의 불행한 사건이 가끔 식도 부분에 둔통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 건강에 이상이 없는 한 앞으로 보다 차원이 다른 작품 세계를 염원하면서 노력 하고 작품들을 위해 남은 생명력을 불태워 갈 각오입니다." (1991년 천경자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
1955년 멀리 파리에서 처음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을 나의 향안에게. 행복과 기쁨이 있기를 바라는 망므으로 진눈깨비 날리는 성북동 산 아래에서 으스러지도록 안아준다. 너를.(1955년 김환기가 아내 김향안에게 보낸 편지)
작품 옆에는 작가들이 직접 쓴 편지글을 소개해 감상의 묘미를 더한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지에서 아내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보낸 편지, 신사임당이 늙은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 떠나는 심정을 표현한 글, 위작 논란으로 뉴욕으로 떠난 천경자가 자신을 위로해준 지인에게 적은 감사 편지, '사랑꾼' 김환기가 아내 김향안에게 보낸 편지 등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