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말 한마디에 부풀었다 쪼그라든 '산유국의 꿈'[기자수첩]

"이제 석유는 없어도 있어야 하는 상황"
대통령 성급한 발표 "공무원 조직 위축 낳을 것"
국민 성원 필수라고 했지만, 국민 불신만 더 키운 꼴

연합뉴스

"이제 석유는 없어도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건국대 이관후 교수가 전화 인터뷰 도중 한 말이야말로 대왕고래로 대표되는 동해가스전 사업 혼란상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이번 석유 소동으로 공무원들이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취재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생각과 동일했다.

사실 석유공사나 산업부 공무원들은 평소 하던 대로 업무 진행 상황을 보고한 것이다. 한국석유공사법 1조에는 석유공사의 설립 목적으로 '석유자원의 개발'이라고 돼 있다. 이미 지난 1월 석유공사 이사회가 탐사시추를 잠정 의결한 것이나, 지난 4월 시추선 계약이 이뤄진 것만 봐도 석유공사는 대통령의 발표와 무관하게 본래 업무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실무진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석유 매장 가능성을 밝히면서 보름 동안 산업부나 석유공사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이들은 쏟아지는 의혹 제기와  비난 등 후폭풍을 감당하느라 밤낮없이 애를 먹었다.

한국석유공사 홈페이지 중 일부, 지난 5일부터 17일까지 15건의 보도해명자료를 냈다.

이 기간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다.  이 과정을 본 공무원들, 산업부가 아니라 어떤 부처든 과연 앞으로 제대로 된 보고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대통령은 임기가 끝난 뒤 떠나지만, 공무원들은 그 자리에 남아 뒷일을 책임져야 한다. 이 때문에 오히려 실무진들은 이 사안을 신중하게 대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물리탐사만 끝낸 탐사 극초기 단계에서 직접 발표를 한 걸 두고 에너지자원학계 한 교수는 "좋은 뜻에서 보자면 자원개발에 돈이 워낙 많이 들다보니 해외 자본 유치를 해야하는데 대통령이 장담할 만큼 확실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 일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시추공 하나 뚫는데 최소 1천억원이 들고, 그나마 낙관적인 전망은 최소 5번이다. 석유공사가 자본 잠식 상태인 걸 고려하면 윤 대통령 역시 해외 기업 유치를 위해서 또는 선의로 직접 나선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발표 이후 산업부의 잇단 해명 브리핑, 심해분석업체(액트지오) 전문성에 대한 각종 의혹, 급기야 발표 사흘만에 액트지오 업체 아브레우 대표가 한국을 찾아 기자회견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자회견 이후에도 액트지오의 4년 영업세 체납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석유공사나 정부가 얼마나 이 일을 허술하게 처리했는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여파는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4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동해에 상당량의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이 있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60%.

왜 대통령이 아직 무르익지도 않은 석유매장 가능성을 직접 발표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정부는 "전국민의 일치된 관심과 성원이 필수적"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성급한 발표는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운 꼴이 됐다.

산업통상자원부 홈페이지 일부

지금의 상황과 무관하게 석유공사는 올 11월 예정대로 7개 유망구조에 대한 시추를 시도하게 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성급한 발표에 대해 비판은 하면서도, "그래도 시추는 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말한다. 그만큼 에너지 안보나 자원 확보라는 대의를 생각하면 경제성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대통령이나 정치권이 더 이상 석유개발 정책을 정치적인 사안으로 가져가려 하지 말고 정말로 국익을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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