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 '보릿고개'…'이것' 안 바뀌면 못 넘는다

국내 전기차 시장 침체 장기화 조짐
충전·주행 등 기술적 부분 힘쓰지만
안전 불안감 못 잡으면 반등 어려워
"기술과 더불어 인식 개선 활동 필요"

류영주 기자

국내 전기차 시장의 침체가 심상치 않다. 풀릴 듯해 보이던 수요 둔화가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한 채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전기차 살 사람은 이미 다 샀다'는 한켠의 목소리가 어느새 맞는 말처럼 굳어져가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충전·주행거리 등 불편함을 해소하는데 공을 들이지만, 전문가들은 지금의 전기차 시장 침체 원인은 또 다른데 있다고 분석한다. 기술적인 부분 만큼이나 안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는 진단이다.

14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3만627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만438대보다 28.1% 감소했다. 얼리어답터 중심의 초기 수요가 소진되면서 예상보다 일찍 침체기가 찾아왔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1.1% 감소하며 주요 자동차 시장에서 유일하게 역성장을 보였다.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시장의 현주소를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이라고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강구하고 있다. 충전 속도 향상과 충전 인프라 확충에 힘쓰고 주행거리를 늘리는 등 기술·시설 분야에 어느 때보다 몰두하고 있다. 전기차의 '편의성'이 담보돼야 잠재 고객들을 유인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물론 전기차가 갖는 불편함이 잠재 고객들의 선택을 주저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은 맞다. 여러 설문조사를 봐도 그렇다. 충전 속도의 향상이나 주행거리 개선 없이는 전기차가 미래 자동차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기는 힘들다.

다만 얼리어답터를 흡수한 현재의 '캐즘'에 비춰볼 때 전기차를 선택하지 않는 이들의 기저에는 불편함 그 이상으로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있다는 게 최근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기술 향상으로 전기차의 불편함이 해소되더라도 안전상 부정적인 인식에 변화가 없다면 캐즘은 곧 장기 침체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회장은 "전기차 수요 부진이 지속될 경우 전기차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우리 자동차 산업 생태계의 전동화 전환 동력이 상실될 우려가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전기차에 대한 일반 국민의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 인식 개선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고 짚었다.

실제 전기차사용자협회(김성태 회장)가 전기차 보유자 128명과 비보유자 401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기차 시장 확대를 위해 필요한 해결책으로 '안전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23.4%)고 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그간 언급돼온 '배터리 효율·주행거리 증가'(18.3%)나 '충전 인프라 확대'(17.2%)는 안전 불안감을 따라가지 못했다.

부정적 인식은 전기차 보유자보다 비보유자들이 특히 강했다. 비보유자의 절반이 넘는 55.2%가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의 화재나 급발진 사고 빈도가 더 높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또 전기차를 보유한 경우 10명 중 9명 꼴인 90.6%가 전기차 경험에 만족한다고 답한 반면, 비보유자는 67.4%만 전기차 경험에 만족했다.

전기차사용자협회 김성태 회장은 "전기차 사용자보다 비사용자의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기차를 둘러싼 매체들의 부정적 언급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분석하며 "전기차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검증되지 않은 무분별한 콘텐츠에 점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전기차를 바라보는 일반의 불안감에 공감하며 안전성 향상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자동차안전연구원 문보현 책임연구원은 "세계 최초로 자동차안전도평가(KNCAP)에 전기차 안전성 분야를 도입했다"며 "국민들이 화재 등 전기차 안전성에 대해 우려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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