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파탄 책임 최태원 회장에"…재산분할·자료 20배 뛴 배경은

재판부 최태원 회장에 책임, 부정행위 시기도 특정
노 관장 정신적 충격 손해배상…"1심 위자료 적다"
30년 만에 딸 소송서 공개된 김옥숙 여사 '어음·메모'
'300억' 노태우 전 대통령→최종현 선대회장으로
재판부 "태평양 증권 인수 자금으로 쓰였다고 인정"

연합뉴스

재산분할 1조 3808억 원에 위자료 20억 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부장판사)가 지난달 30일 인정한 재산분할과 위자료 규모다.

이는 1심 판단이었던 재산분할 665억 원과 위자료 1억 원보다 각각 20배 이상 뛴 액수다.


최태원 회장 부정행위…정신적 충격 손해배상

박종민 기자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혼인이 깨진 책임은 최 회장에게 있다고 봤다. 특히 최 회장의 옥중 '자필 편지'를 들어 최 회장의 동거인으로 알려진 티앤씨재단의 김희영 이사장과의 부정행위가 시작된 시점도 특정했다.

김 이사장은 2008년 6월 전 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고 그해 11월 이혼했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최 회장이 부정행위를 시인하는 시점은 2009년경이다.

그러나 최 회장이 노 관장에 보낸 편지에는 '내가 김희영에게 이혼하라 했고 아이도 낳게 했다. 모든 것은 내가 계획한 것이고 시킨 것이다'란 내용이 담겼다. 재판부가 "이는 혼인 관계의 유지와 존속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고 결정적"이라며 "만약 최 회장이 노 관장과의 혼인 관계를 존중했다면 도저히 이럴 수가 없다"며 질타한 부분이다.

이를 바탕으로 재판부는 김 이사장의 이혼 소송이 제기된 시기 전에 최 회장과의 관계가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과거 최 회장의 횡령 사건과 엮인 SK해운 김원홍 전 고문이 주요 인물로 등장했다. 재판부는 "김 이사장이 이혼할 무렵 직업은 김 고문이 투자한 중국 상하이 회사 직원으로 돼 있다"며 "2008년 6월 전에 (최 회장이) 직업을 얻을 수 있게 해줬다"고 했다. 최 회장 측은 김 이사장과 김 전 고문은 최 회장의 소개 전에는 사전에 서로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근거로 볼 때 부정행위가 이미 2008년에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다른 형사 재판 증인으로 나와 '자신은 김 이사장의 이혼 소송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 점을 언급하며, 옥중 자필 편지와 배치돼 최 회장 주장 등에 신빙성에 의문이 생긴다고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위자료 액수를 늘린 근거도 구체적으로 밝혔다. 재판부는 "장기간 김희영과 부정행위를 계속하고 공개적 활동을 해 유사 배우자 지위에 있는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 헌법이 보장하는 일부일처제 등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며 "2009년 5월 노 관장이 암 진단을 받은 것을 보면 최 회장의 행동 자체가 노 관장에게 정신적 충격을 줬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최 회장이 김 이사장과 생활하면서 최소 219억원을 사용했다고 판시했다. 한남동 주택을 건축해 김 이사장을 무상거주하게 하는 등 다양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혼인 관계가 끝나지 않은 노 관장의 카드를 2019년 2월 일방적으로 정지시켰고, 1심 판결이 나오자 현금 생활비 지원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30년만에 딸의 이혼 소송에서 공개된 김옥순 여사 '어음과 메모'


"노태우 뇌물 관련 형사 사건의 수사·재판뿐 아니라 이 사건 1심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30년간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1조 3808억 원이란 역대급 재산분할 규모가 나온 데는 재판부가 최 회장의 SK(주)지분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항소심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 원이 SK 측으로 흘러 들어가 그룹 성장에 기여했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SK성장에 노 관장의 부친인 노 전 대통령의 지원이 있었다며, 그 근거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약속어음'과 메모를 들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 온 것으로 1심에서는 법정 증거로 나오지 않았지만, 항소심 재판에서 새롭게 증거로 제출됐다. 노 관장 측은 300억 원의 자금이 최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 넘어갔고 장당 50억짜리 6장, 총 300억 원 어치의 약속어음과 메모가 이를 증빙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관장 측은 "300억원이 태평양 증권(현 SK증권)의 인수와 SK의 사업자금으로 쓰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최 회장 측은 SK 측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활동 자금 등을 요구하는 경우 도움을 주기로 했다는 일종의 약속을 위한 증빙이라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300억원이 비자금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노 전 관장 측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고 판단했다. SK 측은 태평양증권 인수에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아닌 계열사 자금이 쓰였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자료 제출을 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옥숙 여사가 1998년과 이듬해 작성한 메모도 주요한 역할을 했다. 해당 메모에는 '선경 300억'은 물론 '최 서방 32억' 등 구체적인 액수가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나머지 메모들이 과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한 재판 등에서 드러난 인물과 액수와 일치한다는 점을 들어 메모의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SK에 흘러 들어간 자금이 지금에서야 공개된 배경에 대해 양측 모두 출처를 밝히기 어려웠을 거라고 봤다. 노 관장 측 주장에 따르면 태평양 증권의 인수는 대통령 비자금으로, 최 회장 측 주장에 따르면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돈으로 이뤄진 셈이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SK에 유·무형적 기여를 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태평양 증권 인수 과정이나 SK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서 노태우가 최종현에게 일종의 보호막·방패막이 역할을 했다"며 SK의 모험적 경영의 배경이 됐다고 했다. 이를 근거로 SK주식 등 최 회장의 재산 대부분이 공동재산으로 인정돼 재산분할 대상이 됐다.

재판부는 SK가치 증가에 노 관장의 경영 활동과 가사 노동의 기여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 관장은 가사와 자녀 양육을 전담하면서 최 회장의 모친이 사망 이후 그 지위를 실질적으로 승계하는 등 대체재, 보완재 역할을 했다"고 판시했다.

판결 이후 SK 측은 "당시 사돈이었던 6공(共)의 압력으로 각종 재원을 제공했고, 노 관장 측에도 오랫동안 많은 지원을 했다"며 상고의 뜻을 밝혔다. 이로써 세기의 이혼이라 불린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은 대법원에서 최종 가려지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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