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정책연구원이 지난 16일 발표한 정례 여론조사에서 독자 핵무장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찬성 여론은 70.9%였다. 이는 2011년 첫 조사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른바 '한반도의 봄'을 구가하던 2018년 54.8%로 최저점을 찍었던 독자 핵무장론은 2019년 '하노이 노딜'로 북한 비핵화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면서 반등세로 돌아섰다.
다만 지난해 4월 한미 양국 정상의 '워싱턴 선언'을 계기로 동력이 잠시 급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강화된 '핵우산'을 대가로 사실상 독자 핵무장 포기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국제 비확산체제의 초석인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의무에 대한 우리나라의 오랜 공약과 한미 정부간 '원자력협정'의 준수를 재확인한다"고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자체 핵 보유'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당시 국내에서 비등하던 핵무장론을 등에 업은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 선언으로 분위기는 단숨에 반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에 대해 "핵개발을 위한 서울의 '외도'(dalliance)가 점증하는 위험 요인이 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선제적으로 제어한 (미국의) 영리한 노력"이라고 했다.
이로써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 독자 핵무장론은 찬 서리를 맞은 듯 일거에 위축됐다.
실제로 워싱턴 선언 이후 통일연구원 여론조사에선 '핵보유 찬성' 여론이 60.2%로 1년 전에 비해 약 9% 포인트 떨어졌다. 특히 핵개발 추진시 맞게 될 경제제재나 한미동맹 파기 등의 가능성을 감안한 질문에는 찬성론이 36~37%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부상하면서 상황은 또다시 대반전을 맞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지난달 말 발표한 '한국의 핵무장 옵션' 보고서가 단적으로 말해준다. 보고서는 한국 내 전문가 그룹은 독자 핵무장에 대체로 회의적이라면서도 "만약 (트럼프 행정부 당시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백악관에 돌아온다면 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일반 대중(76%)보다 전문가들의 핵무장 찬성률(34%)이 크게 낮다고 분석하긴 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신중할 수밖에 없는 전문가들의 성향을 감안하면 이 숫자도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3%, '잘 모르겠다'는 응답도 13%인 점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 미국의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는 지난 16일 '한국의 핵개발에 대한 대논쟁이 재개됐다'는 제하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전임 정책 담당자의 입을 통해서도 핵무장이 공론화되고 있다. 이는 전에 없던 현상이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1일 한 포럼에서 '잠재적 수준'이란 전제를 달면서도 "남과 북의 핵균형과 이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 안보 구조의 정상화"를 주장했다. 그는 "잠재적 핵 능력을 갖추는 자체가 전략적 자율성을 개선시킴으로써 적대국과 우호국에 대해 공히 억지 효과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독자 핵무장의 현실성이나 국익에 미칠 유불리 여부를 떠나,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을 고려해 한미 군사동맹의 근본적 재조정까지도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