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열 살 때 멸종위기 동물을 이미 알고 있었고, 기후변화로 봄과 가을이 줄어드는 걸 알았습니다. 알면 알 수록 제 미래가 위험하게 느껴졌고 이 소송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 학생은 21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기후소송' 마지막 공개 변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어린이 62명이 함께한 아기 기후소송의 청구인으로, 동생들과 2살 된 사촌 동생 아윤이를 대신해 직접 참석했다고 전했다.
헌재는 2020년에서 2023년 사이 제기된 청소년·시민·아기 기후소송과 1차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 등 4건을 병합해 심리하고 있다. 1차 공개변론은 지난달 23일 진행됐다.
소송의 쟁점은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국민의 생명권과 환경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는지다. 청구인들은 탄소중립 기본법과 시행령, 국가 기본계획 등에서 정해둔 '2030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기준 40%만큼 감축한다'는 목표가 지나치게 부실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 세계적으로 2019년 배출량 기준으로 2030년까지 43%, 2035년까지 60%만큼 감축해야 한다고 분석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보고서가 근거다.
반면 정부 측은 '파리 협정'은 국가별 배출 감축량을 별도로 정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정부의 감축 목표치가 위헌인지 여부를 판단할 기준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한제아 학생은 "기후변화와 같은 엄청난 문제를 우리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며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우리는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목표를 높게 세우고 실패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목표가 낫다'고 했다. 마치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세대의 문제 해결보다는 현재세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며 "2031년이 되는 그때까지 지구의 온도는 얼마나 올라갈까요. 저는 이 소송이 2030년, 그리고 2050년까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기후재난은 이미 현실이다. 2022년 8월, 하루 동안 엄청나게 비가 쏟아진 적이 있었다"며 "저희 집 건물은 언덕 위에 있는데도 1층이 물에 잠겼다. 집 주변을 살피러 엄마가 밖에 나갔을 때는 다치거나 못 돌아올까 봐 무서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희는 이미 학교에서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배우고 있다. 기후위기가 닥친 상황에서도 살아가야 하고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청소년 당시 소송을 낸 대학생 김서경씨도 이날 "우리가 정부와 정책결정자들에게 기후대응을 요구해 왔던 이유는 (기후위기는) 더 이상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재난의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날 변론에는 전문가들도 참고인으로 출석해 정부의 감축 목표가 타당한지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연세대학교 박덕연 법무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그동안 감축목표를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설정해 왔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현 정부 들어 발표한 탄소중립 기본계획은 감축 속도를 더욱 늦추고,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며 "현재 세대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면, 미래 세대는 온실가스 배출할 잔여 탄소예산이 없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미래세대는 더욱 고통스러운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반면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유연철 사무총장은 "기후변화는 긴 호흡을 갖고 봐야 한다"며 "(2030년) 감축 목표가 너무 낮으니 사법적 판단으로 넘기자는 것은 아직 이른 것 같다"며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헌재는 이날 변론을 마무리했다. 이후 재판관들이 합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한다. 이르면 올해 9월 이전에 결론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