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세계를 둘러싼 잔혹함 앞에 인간은 어떻게 견디고 나아가야 할까.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이후 9년 만에 다시 돌아온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황무지 안에서 '희망'이란 무엇인지 종교와 신화를 비틀며 끊임없이 묻는다.
문명 붕괴 45년 후, 황폐해진 세상 속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풍요가 가득한 '녹색의 땅'에서 자란 퓨리오사(안야 테일러-조이)는 바이커 군단의 폭군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의 손에 모든 것을 잃고 만다.
가족도 행복도 모두 빼앗기고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퓨리오사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생 전부를 건 복수를 시작한다.
조지 밀러 감독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이후 9년 만에 들고 온 건 어린 퓨리오사가 어떻게 사령관의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 15년 이상에 걸쳐 펼쳐지는 대서사다. 전편에서 희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 할 곳은 어디인지 물었다면, 이번에는 전편에서 이야기했던 '희망'을 보다 구체적으로 묻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감독은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이하 '퓨리오사')를 종교와 신화적인 요소로 쌓아 올린 흥미로운 묵시록이자 여성 영웅의 탄생 서사시로 그려냈다.
그러나 '매드맥스'라는 종말의 세계관 안에서 에덴은 모계 위주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한 배경에서 여성인 퓨리오사는 멸망 이후의 세계에서 에덴이라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자 퓨리오사 자신을 지탱하는 '희망'을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키고자 한다. 그를 상징하는 것이 씨앗과 지도다.
이처럼 희망을 품고 있는 퓨리오사와 달리 점차 희망에서 절망으로 나아가는 인물은 영화 내내 퓨리오사와 대척점에 서 있는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다.
마치 자신이 사막의 선지자이자 선동가처럼 행동하는 디멘투스는 구원과 자유를 말하지만, 정작 그의 행동에서는 구원과 자유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절망과 억압, 꺾인 희망의 상징인 디멘투스는 거짓 선지자이자 거짓 선동가다.
이러한 두 인물을 중심으로 영화는 '우리를 둘러싼 잔인함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향해 총 5장으로 풀어 나간다. 그 과정 내내 그리고 끝에 놓인 것은 결국 '희망'이다.
퓨리오사는 끊임없이 에덴이라는 희망을 향해 달려가고자 하는 인물이고, 디멘투스는 황무지로 변한 세계, 즉 종말의 세계에서 점차 희망을 지워가는 인물이다. 그런 디멘투스에게 퓨리오사는 끊임없이 반항한다.
또한 디멘투스는 '불', 즉 가스와 무기를 이용해 황무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목숨을 잔혹하게 빼앗았다. 결국 퓨리오사에 의해 황무지 한가운데 걸린 그의 최후는 비틀린 프로메테우스 신화이자 거짓 선지자의 모습처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퓨리오사가 어떤 것을 바라고, 어떤 길을 걸을지 보여주는 건 대척점에 선 디멘투스만이 아니다. 인간성이 말살되고 잔혹함만이 남은 세상에서 퓨리오사는 잭(톰 버크)에게 가장 인간적인 감정에서 기반한 유대감을 느낀다. 잭 역시 황무지 안에서 녹색이 자라날 수 있다는, 어찌 보면 황당무계할 수 있는 희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인물이다.
최소한의 인간성과 인간적인 유대, 그리고 그런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한 분노는 오로지 정복과 욕망에 기반한 디멘투스의 분노와는 다르다. 그리고 이 역시 퓨리오사와 디멘투스가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역사는 끊이지 않는 전쟁의 역사고, 종말의 세계에서도 전쟁은 마치 필수적인 역사의 수순처럼 인간의 삶과 희망을 앗아간다. 남성이 중심이 된 전쟁의 역사 안에서 여성은 가장 약자이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세계관 안에서 퓨리오사는 오히려 이를 뛰어넘고 에덴이라는 희망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여성 영웅이라는 건 여러모로 뜻깊다.
약 한 시간가량을 어린 퓨리오사가 연기하고, 이후에서야 비로소 성인 퓨리오사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린 퓨리오사 알릴라 브라운의 뛰어난 연기 덕분에 안야 테일러 조이의 퓨리오사로 가는 과정에 쉽게 몰입할 수 있다. 또한 안야 테일러-조이 역시 깊은 눈빛 연기로 퓨리오사의 젊은 시절을 그려냈다.
조지 밀러 감독이 황무지에서 펼쳐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 그리고 퓨리오사가 어떻게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이르렀는지 15년의 세월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전편과는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 '분노의 도로'의 반가운 명장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있으니 마지막까지 놓쳐선 안 된다.
148분 상영, 5월 22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