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한국 사회의 갈등 원인은 "상대를 '가르치려 드는' 획일적인 교육으로 인해 배움의 본연을 망쳐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조선시대 군왕과 신하들이 모여 함께 토론하며 학문을 닦고 세상 물정과 민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경연'(經筵)은 자취를 감췄다. 일제강점기 식민화를 위한 획일적인 교육으로 인해 토론 학습은 우리 교육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데 원인이 있다고 짚었다.
최 교수는 저서 '숙론'(熟論)을 통해 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 옳은가를 찾는 방법을 제시한다.
토론(討論)은 춘추전국시대 논어 헌문(憲問)편에 처음 등장한다. 주나라 제후국인 정나라 재상 자산이 외교문서를 작성하는데 창의력이 뛰어난 비심이 초안을 작성하고, 성격이 치밀한 세숙이 검토(토론)했고, 외교가인 행인자우가 자구와 내용을 수정하였고, 종합 능력이 뛰어난 동리 자산이 윤색했다고 전한다. 공자는 비심이 기초한 초안을 '자세히 살펴 의견을 제시'한 세숙의 토론을 칭찬했다고 전해진다.
토론은 일본에서도 그대로 쓰이고, 중국도 讨论(tǎolùn·간체)이라고 적는다.
서양에서의 토론(discussion)은 조금 다른 의미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생각을 다듬는 행위를 뜻한다. 최 교수는 오늘날 우리의 토론은 상대의 의견을 끝장내고 제압하고자 하는 탓에 남의 혜안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고 말한다. 결국 논쟁(debate) 혹은 여기에도 못 미치는 언쟁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자는 불통 사회를 소통 사회로 바꾸는 대화 혁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제시한 방법이 토론을 넘어선 '숙론'(熟論)이다. 영문 표현으로 전환하면 '담화'와 '토론'의 깊이 있는 결합으로 번역되는 '디스코스'(discourse)다.
숙론은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는 말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이 왜 다른지 궁리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 함께 숙고하고 충분히 의논해 좋은 결론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다툼이 만연한 시대에 서로 알고 사랑하는 소통 방식의 경험을 소개하며 어떻게 마주 앉아 대화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있는 고찰도 전한다.
책은 우리에게 왜 숙론이 필요한지와 저자 자신이 국내외에서 직접 이끌었던 숙론 현장의 분위기를 소개한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게 돼버린 토론을 넘어, 내실있는 숙론 진행을 위한 구체적 방법과 지난 45년 동안 강단에 서며 쌓아올린 통찰과 경험, 지식과 지혜를 풀어내 숙론으로 나아가는 문을 연다.
우리에게 너무 관념화 된 토론.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 이겨야만 하는 한국식 토론 문화의 폐해도 지적한다. 이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지만 결국 싱거운 결론에 그치는 토론에서, 어렵지만 상대와 협력하는 '숙론'으로 이끌고자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소통의 본질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성공학의 대가 카네기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 "알면 용서한다"라고 말했듯, 우리는 서로 "모르기 때문에 미워하고 시기한다". 나아가 "인간은 상대를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끝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본성을 타고 났다"면서 그렇기에 이해관계로 얽힐수록 서로 마주 앉아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개한 '살롱 문화'처럼.
최 교수는 결국 모욕이 아닌 모색, 굴복시키는 것이 아닌 회복, 무너뜨리기보다 무릅쓰고 합의하려 애쓰는 대화에 초점을 맞추자고 말한다.
최재천 지음 | 김영사 | 2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