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일러두기'로 2024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조경란 작가의 중편 소설 '움직임'은 장편 '가족의 기원'에서부터 연작소설집 '가정 사정'에 이르기까지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해온 조 작가의 가족 서사의 시작점에 놓인 작품이다. 20년 만에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움직임'은 엄마를 잃은 주인공 신이경(나)은 혼자 있기 싫다는 이유로 할아버지를 따라 외갓집으로 온다. 하지만 여전히 어둡고 우울한 삶 속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이경은 내팽겨쳐진 조그만 화단을 다시 가꾸기 시작하고, 가족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이상한 동물원 같은 외갓집에서 새로운 가족을 꿈꾼다.
어둡고 불편하고 빈한한 풍경 속을 지나며 삶의 공허 속에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애틋한 '움직임'을 그렸다.
조경란 지음 | 작가정신 | 124쪽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넘나드는 작가 정지돈이 이번엔 '인공 자궁'이라는 소재를 통해 우리에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가족'이라는 제도를 새롭게 정의한다.
신간 '브레이브 뉴 휴먼'은 인공 자궁이 상용화돼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일반인'들과 인공적으로 태어난 '체외인'들이 공존하는 근미래를 그린다. 체외인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 체외인들 사이에서도 나뉘는 계급과 분열 속에서 인간의 존재 이유, 그 답의 단서를 '가족'에서 찾아간다.
전작 '언리얼 퓨처: 22세기 서울'과 '가족의 방문'에서 인공 자궁과 가족 제도를 다뤄왔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꿈속의 다른 세계가 아닌 꿈의 일부인 우리의 현실을 다룬다. 이를 통해 '평생 진실이었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다면?'이라는 질문을 끊임 없이 던진다. 그리고 계속해서 행동하고 움직일 것을 요구한다.
정지돈 지음 | 은행나무 | 204쪽
'보편 교양'으로 2024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김기태의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정치적·윤리적으로 복잡한 결을 지닌 현대 세계에서 길을 잃은 우리의 초상을 정확히 직면하면서 시작된다.
소설집을 여는 '세상 모든 바다'의 걸 그룹 '세상 모든 바다' 콘서트장에서 마주친 하쿠와 영록. 하쿠는 영록에게 게릴라 콘서트가 뒤이어 열릴 것이라는 소문을 전하지만 그 소문에 몰려든 인파와, 주목을 위해 연출된 '테러'에 휘말려 영록이 죽고 만다. 죄책감에서 채 헤어나오기도 전에 사망 사고의 책임을 둘러싸고 모두가 서로에게 비난을 가하는 상황 앞에서 하쿠는 길을 잃는다.
이어지는 소설들은 짙은 안개가 깔린 듯 막막한 시야 가운데서 이정표처럼 날카롭게 솟는다. 삶이라는 무대에서 고군분투하며, 진지하되 위트 있고 상처받되 사랑을 잃지 않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3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