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바이든·트럼프 전·현직 대통령 간 '리턴매치'로 사실상 정해졌지만, 무소속 로버트 케니디 주니어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를 넘는 지지율을 나타내면서 무시못할 대선 변수가 되고 있다.
케네디 후보가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 후보로 나선 탓에, 트럼프 전 대통령측은 처음에는 케네디의 출마를 반겼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케네디가 공화당 표를 더 잠식한다는 결과가 나오자 바짝 경계하는 모습이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케네디 주니어는 바이든을 돕기 위해 민주당이 심어 놓은 급진적 좌파주의자"라고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달 미국의 유력 정치 가문인 케네디가(家)의 공식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지지층을 한데 모아야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을 탈당한 케네디가 표심을 분산해 바이든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이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이 6개월이나 남은 상황에서 케네디가의 공식 지지를 과시한 것은 그만큼 무소속 케네디 주니어 후보의 출마를 심각하게 여긴다는 징후"라고 평가하기도했다.
케네디 후보가 현재 민주·공화 양당 후보의 표를 갉아먹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중 누구의 지지율을 더 가져가고 있는지는 명확지 않다. 양당 모두 케네디를 주시하고 있는 이유이다.
지난 1~3일 여론조사 기관 팁인사이츠(Tipp insights)가 유권자 12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양자대결에서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각 42%, 4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같은 조사에서 케네디 주니어 후보 등을 포함한 5자 구도에서는 바이든 39%, 트럼프 38%, 케네디 12%의 결과가 나왔다.
케네디 후보는 미국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전현직 간 '재대결'에 대해 '피로감, 두려움, 슬픔을 느낀다'고 답한 여론조사 결과가 있을만큼 '오래된' 후보들에 반해 '신선함'을 자신의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기다 케네디 후보는 1963년 피살된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조카이자, 1968년 마찬가지로 총격으로 사망한 로버트 F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아들이다. 고령의 유권자들에게는 과거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70세인 케네디 후보도 적지 않은 나이지만, '고령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는 81세 바이든 대통령과 77세인 트럼프 전 대통령에 젊은 것도 사실이다.
케네디 주니어의 슈퍼팩(민간 후원 운동)인 '아메리칸 밸류 2024'는 올해부터 새로운 홍보 전략의 일환으로 '아메리카 무브스'(AmericaMoves)를 출범했다.
이 활동은 '미국인이 하루에 최소 24분 운동하면서 건강한 습관을 갖자'는 캠페인으로 은연중 케네디의 건강을 널리 알리겠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대선을 앞두고 케네디 후보의 존재감이 부각되면서 언론 검증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케네디 후보가 지난 2010년 심각한 기억 상실에 시달렸고, 뇌 스캔 결과 의사들이 그의 뇌에서 기생충이 일부 조직을 파먹은 뒤 사망한 흔적을 찾아냈다"고 보도했다.
그가 뇌 기생충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평소 '건강' 문제로 바이든·트럼프와의 차별화를 시도해왔다는 점에서 악재인 셈이다.
이에 대해 케네디 캠프측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을 여행하며 기생충에 감염된 것이며, 해당 문제는 이미 10년도 전에 해결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물론, 양당 제도가 정착된 미국에서 케네디 같은 무소속 후보가 곧바로 백악관에 입성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다만 박빙의 선거 국면이 이어질 경우, 케네디 후보가 다른 누구의 표를 더 잠식하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난 1992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 후보가 경쟁했을 때 로스 페로가 제3의 후보로 등판해 전국적으로 20%에 가까운 득표율을 올렸다.
물론 로스 페로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지만 당시 공화당 표를 잠식하면서,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막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