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예운동의 창시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수집한 '자수 십장생도 병풍'(19세기)과 궁녀들이 수놓은 궁수이자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보료'(19세기) 등을 볼 수 있다. 근대 전환기에 급성장한 평안도 안주의 남성 자수장인 집단이 제작한 안제민의 '자수 지장보살도'(1917)는 일반 관객에게 처음 공개한다.
일제 강점기, 적지 않은 수의 한국 여성들은 도쿄에 위치한 여자미술전문학교(현 여자미술대학)에 유학해 자수를 전공했다. 이들은 귀국해 전국의 여학교, 기예학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또한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부터 서예부가 폐지되고 공예부가 신설되면서 공예품이 미술공예로 거듭나는 발판이 마련됐다.
전시 2부는 박을복, 나사균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유학생들의 활동을 조명하고 이들에게 지도받았던 조선 여학생들의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국화와 원앙'(1937)은 박을복의 여자미술전문학교 졸업작품으로 비단실의 광택을 살려 국화와 한 쌍의 원앙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나혜석의 조카인 나사균의 '축계'(1937)는 대나무 숲속에 등장한 한 무리의 닭을 광택감과 입체감을 살려 작업했다. 숙명여고 졸업반 학생들이 3년에 걸쳐 공동 제작한 자수 병풍 '등꽃 아래 공작'(1939)도 볼 수 있다.
해방 직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에 자수과(1981년 섬유예술학과로 편입)가 설치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 자수는 여자미술전문학교 자수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동시대 미술흐름과 맞물려 자수 분야도 추상이라는 새로운 조형언어를 적극 수용했다.
3부에 전시된 김인숙의 '계절 Ⅱ'(1975)는 1960~70년대 추상 자수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생명이 움트는 봄의 기운을 표현한 이 작품은 초록과 베이지 계열 색실을 엮고 겹치고 매듭짓고 자유롭게 수놓아 풍성한 입체감을 만들었다.
'작품 A'(1965)는 전통자수의 재료적, 도안적, 기법적 한계를 넘어 추상 자수를 추구했던 송정인의 실험 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독학으로 자수를 익힌 송정인은 전통자수로 집안을 일으키고 추상자수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학교에서 자수의 위상이 줄어든 것과 달리 학교 밖에서 자수는 주요 수출품목이자 보존·계승해야 할 전통공예로 부각됐다. 4부는 국가무형문화재 자수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