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EN:]자수는 규방공예?…편견 깨는 '韓근현대자수'전

송정인 '작품 A'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전이 5월 1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막한다. 19세기부터 현대까지 한국 자수의 역사를 살펴보는 대규모 전시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1점), 필드 자연사박물관(3점), 일본민예관(4점),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출품한 자수, 회화, 자수본 등 170여 점과 아카이브 50여 점을 선보인다.

1부 전시장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 1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제작된 전통자수로 시작한다. 생활 자수, 복식 자수, 수불, 자수 병풍 등 다양한 전통자수를 선보인다. 규방 자수로만 인식됐던 자수는 개항 이후 공예 개념이 도입되면서 기술 또는 산업으로 여겨졌고 국내외 박람회에 출품되기 시작됐다.

일본 민예운동의 창시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수집한 '자수 십장생도 병풍'(19세기)과 궁녀들이 수놓은 궁수이자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보료'(19세기) 등을 볼 수 있다. 근대 전환기에 급성장한 평안도 안주의 남성 자수장인 집단이 제작한 안제민의 '자수 지장보살도'(1917)는 일반 관객에게 처음 공개한다.

일제 강점기, 적지 않은 수의 한국 여성들은 도쿄에 위치한 여자미술전문학교(현 여자미술대학)에 유학해 자수를 전공했다. 이들은 귀국해 전국의 여학교, 기예학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또한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부터 서예부가 폐지되고 공예부가 신설되면서 공예품이 미술공예로 거듭나는 발판이 마련됐다.

전시 2부는 박을복, 나사균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유학생들의 활동을 조명하고 이들에게 지도받았던 조선 여학생들의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국화와 원앙'(1937)은 박을복의 여자미술전문학교 졸업작품으로 비단실의 광택을 살려 국화와 한 쌍의 원앙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나혜석의 조카인 나사균의 '축계'(1937)는 대나무 숲속에 등장한 한 무리의 닭을 광택감과 입체감을 살려 작업했다. 숙명여고 졸업반 학생들이 3년에 걸쳐 공동 제작한 자수 병풍 '등꽃 아래 공작'(1939)도 볼 수 있다.

해방 직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에 자수과(1981년 섬유예술학과로 편입)가 설치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 자수는 여자미술전문학교 자수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동시대 미술흐름과 맞물려 자수 분야도 추상이라는 새로운 조형언어를 적극 수용했다.

3부에 전시된 김인숙의 '계절 Ⅱ'(1975)는 1960~70년대 추상 자수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생명이 움트는 봄의 기운을 표현한 이 작품은 초록과 베이지 계열 색실을 엮고 겹치고 매듭짓고 자유롭게 수놓아 풍성한 입체감을 만들었다.

'작품 A'(1965)는 전통자수의 재료적, 도안적, 기법적 한계를 넘어 추상 자수를 추구했던 송정인의 실험 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독학으로 자수를 익힌 송정인은 전통자수로 집안을 일으키고 추상자수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이장봉 '파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흔치 않게 벽난로 앞에서 불을 쬐며 독서하는 여성을 소재로 삼은 김혜경의 '정야'(1949), 자수 작가로는 유일하게 자화상을 제작한 이장봉의 '파도'(1995)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학교에서 자수의 위상이 줄어든 것과 달리 학교 밖에서 자수는 주요 수출품목이자 보존·계승해야 할 전통공예로 부각됐다. 4부는 국가무형문화재 자수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한상수(198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의 '궁중자수 모란도 병풍'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최유현(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의 '팔상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상수(198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의 '궁중자수 모란도 병풍'은 각 폭마다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장수를 의미하는 괴석을 배치해 궁중미술의 호화로움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1970년대에 한상수의 자수 병풍은 혼수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최유현(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의 '팔상도'(1987~1997)는 양산 통도사에 소장된 '팔상도'를 모본으로 제작했다. 섬세하고 치밀한 자수 기법과 선명하고 화려한 색감이 좌중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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