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참패 이후 당 수습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국민의힘은 29일 정치권 최대 이슈인 영수회담에서 전혀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당초 윤석열 대통령도 "여당의 지도부를 대통령이 무시하는 게 될 수도 있다"며 대통령과 제1야당의 단독 영수회담에 부정적이었지만, 총선 참패로 힘을 잃은 여권은 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차담회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음달 3일 치러지는 원내대표 선거에는 '눈치보기' 때문에 적극 나서는 사람 없이 친윤계 후보가 유력해지고 있고, 비대위원장도 '구인난' 끝에 원내 인사가 아닌 황우여 상임고문이 지명됐다.
당내에서는 그나마 황 상임고문이 합리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는 점이 다행스럽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노마지로(老馬知路, '늙은 말이 길을 잘 안다')'라는 포부를 밝힌 황 상임고문이 전당대회 규칙 개정을 두고 벌어지는 물밑싸움에서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尹-李 영수 회담에서 사라진 與…'정권 심판' 성찰 요구에도 눈치만
국민의힘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영수회담에서 존재감을 상실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범죄혐의자'인 이 대표가 단독으로 윤 대통령과 마주앉는 그림을 지켜보게 된 것인데, 총선 이전에는 상상도 못 할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KBS와의 신년 대담에서 야당 대표와의 단독 회담 제안에 대해 "여당의 지도부를 대통령이 무시하는 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라고 말하며 영수회담을 거절한 바 있다.
하지만 야권이 대승을 거둔 22대 총선 직후, 윤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며 두 사람의 만남이 현실화했는데, 조율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었다.
심지어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5월 임시국회 일정 협상을 위한 교섭단체 및 의장 회동에 불참하며 그 이유에 대해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회의하는 걸 보고 만나야지 (여당이 그 이전에 야당과)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한다"고 말하는 등 자신들의 존재감을 지워버렸다.
총선 참패 이후, 전면적인 성찰과 혁신의 시간이라는 외침이 당내 일부에서 나오고 있지만, 힘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유력 후보군 사이 눈치보기, 자체 정리가 가속화되며, 차기 원내대표에는 '친윤' 이철규 의원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를 두고 "이대로 가면 정권심판 책임자가 당의 얼굴이 되어 국민 앞에 나서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조해진 의원)"라는 우려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관리형' 비대위원장에 황우여 "당 안정화 적합"…'룰 개정' 과제도
전당대회 준비를 위한 관리형 비대위원장 인선도 난항을 겪다가 이날 황우여 상임고문이 비대위원장으로 지명됐다.
윤 권한대행은 "비대위원장 후보 물색 기준은 공정하게 전당대회를 관리할 수 있는 분, 당과 정치를 잘 아시는 분, 당의 대표로서 덕망과 신망을 받을 수 있는 분이었다"며 "황우여 상임고문은 5선 의원이셨고 당대표를 지내시기도 해 전당대회를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황 상임고문도 이날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인선 배경에 대해 "노마지로(老馬知路)의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자신을 늙은 말에 빗대어 낮추면서도, 총선 참패 이후 혼란상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로 해석된다.
당내에서는 황 상임고문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당 안정화 작업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보고 있다. 4선에 당선된 한기호 의원은 "독단적으로 하시지 않고 많은 분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분이니 비대위원들의 중론을 많이 들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의원도 "정치 경험이 많으시니 잘 이끌어주시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황 상임고문은 다음달 2일 국민의힘 전국위원회 의결을 거쳐 비대위원장에 정식 임명된다. 관건은 비대위원 인선이다. 당내에서는 관리형 비대위에 불과하더라도 비대위원 인선을 통해 민심에 다가서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관리형 비대위라고 할지라도 비대위원 면면에 따라 비춰지는 모습 자체가 달라질 수 있고, 그래야 변화와 혁신의 동력이 새 지도부에도 이어질 것"이라며 "총선에서 수도권과 3040이라는 젊은층의 외면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대표할 수 있는 김재섭·김용태 등 초선 당선인들과 수도권 낙선자들이 합류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도 "문제는 비대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할지인데 (당선자 총회에서) 가능하면 강북에서 어렵게 당선된 분이라든지 낙선한 분들까지도 다 포함하는 비대위를 구성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황우여 체제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차기 당대표를 뽑을 전당대회 준비에 착수하며 당을 이끄는 것이다. 실무 준비에 최소 두 달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르면 6월 말~7월 초에도 전당대회는 치러질 수 있다.
동시에 또 다른 핵심 과제는 전당대회 규칙에 관한 것이다. 수도권 당선자·낙선자를 중심으로 현행 당원투표 100%로 당대표를 뽑는 '전대 룰' 개정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데, 황 상임고문의 의중도 민심을 일부 반영하는 쪽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전당대회 규칙 변경은 당헌당규 개정 절차를 밟아야 하고, "당대표는 당원들이 뽑는 것"이라며 민심 반영에 부정적인 기류도 당내에 상당해 의견 수렴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전대 룰 개정 절차가 진행될 경우 전당대회 시점은 뒤로 밀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