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한 시민이 투표권을 박탈당한 사태는 수년 전 검찰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에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관련기사 4.24 CBS노컷뉴스= [단독]"행정착오 때문에 투표 못했다" 선거권 박탈한 '허술 행정']
기본권이 부당하게 제한되는 일이 일어났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유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행정 구조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지난 5일 A씨는 제22대 총선 사전투표에 나섰다가 선거권이 없다는 황당한 통보를 받고 결국 투표를 하지 못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후 A씨는 답답한 심정으로 지자체와 선거관리위원회, 법무부 등에 민원을 제기한 끝에 자신의 선거권이 10년으로 잘못 제한 등록됐다는 설명을 겨우 들을 수 있었다.
CBS 취재 결과, A씨의 선거권을 박탈한 행정 오류는 지난 2016년 부산지검 동부지청에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따르면 A씨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확정받은 지난 2016년, 검찰은 수형인 명부에 A씨의 확정형을 기재했다.
수형인명부는 자격정지 이상의 형(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을 받은 수형인을 기재한 명부로서 검찰청 및 군사법원에서 관리한다. 벌금형은 기재하지 않는다.
당시 A씨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것과 별개로 다른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형을 분리 선고받았다.
수형인명부에는 벌금형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사실은 기재하지 않아야 했지만, 당시 검찰 담당자는 다른 혐의와 함께 정치자금법 위반까지 명부에 잘못 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당시 판결로 인해 2016년부터 5년 동안 선거권을 제한받았다.
동부지청 관계자는 "수형인명부에 혐의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판결문이 복잡하다 보니 당시 담당자가 벌금형인 혐의까지 같이 입력하는 실수를 한 것 같다"며 "형이 확정되고 그 뒤로는 다시 확인할 일이 없어 지금까지 오류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황당한 행정 실수가 일어나고 이를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면서, A씨는 서류 상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후 지난해 A씨의 등록기준지인 B면사무소는 선거를 앞두고 점검하는 과정에서 수형인명부에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이름을 올린 A씨를 발견했다.
수형인명부에 이름이 오른 만큼 당연히 징역형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B면사무소는 검찰에 혐의와 형 확정 사실을 확인한 뒤 A씨를 10년 선거권 제한 대상으로 등록했다.
이 때문에 A씨는 자신의 선거권 제한 기간이 끝난 뒤에 또 다시 선거권을 박탈 당하는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A씨는 "일반인도 알아볼 수 있게끔 판결문에 벌금형에 대해서는 분리 선고를 명시해 뒀다"며 "검찰에서 판결문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행정 처리를 했다는 게 이해가 안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행정 착오가 확인된 뒤 A씨는 뒤늦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다시 얻었지만, 자신의 선거권이 왜 10년으로 잘못 등록되어 있었는지 등 경위와 이유는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관련된 행정 기능이 여러 기관으로 나뉘어 있는 데다 절차도 일반인들이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행정 오류가 발생해도 정작 당사자가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실제로 A씨는 선거권이 제한된 이유를 알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와 법무부, 지자체 등에 수 차례 연락을 돌려야 했고, 그럼에도 이러한 행정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자세히 파악할 수 없었다.
애초 행정 착오를 일으킨 검찰도 수형변경통지만 했다가 취재진이 사실 관계 확인에 나선 뒤에야 오류 발생 경위와 2016년 당시 상황 파악에 나섰다.
국가기관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로 중대한 피해를 본 당사자가 정작 피해 경위에 대해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폐쇄적이고 복잡한 행정 처리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동부지청 관계자는 "당사자가 이의제기를 한 뒤 곧바로 조치가 취해진 상황"이라며 "앞으로는 이런 과오가 다시 발생하지 않고 국민의 주권이 제대로 행사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