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장발장 은행장 별세

파리 망명 경험 책으로 펴내…한국 사회에 '똘레랑스'
벌금 미납으로 옥살이 막자…'장발장은행' 운영도

연합뉴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한국 사회에 '똘레랑스'를 전했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홍세화 장발장 은행장이 18일 별세했다. 향년 77세.

홍세화는 이날 낮 12시쯤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입원 중 숨을 거뒀다. 빈소는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며, 장례는 '한겨레 사우장'으로 진행된다.

홍씨는 지난해 2월 전립선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국립암센터와 녹색병원을 오가며 항암 치료를 해오던 그는 한 차례 상태가 호전됐다가 지난해 가을쯤부터 악화됐다. 이후 지난주 '더 이상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씨는 1977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무역회사에 입사해 1979년 해외 지사 근무 도중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이후 파리에서 생활을 엮어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1995년 출간되면서 한국에 '똘레랑스' 개념을 퍼뜨린 지식인으로 유명하다. 똘레랑스는 나와 다른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이자는 의미로, '관용'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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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99년 출간한 문화 비평 에세이 '센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2001년에는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기획위원과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2011년에는 한겨레가 발생하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을 역임했다. 2013년에는 계간지 '말과 활'을 창간했다.

홍씨는 정치와 사회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2012년에는 진보신당(현 노동당)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2015년부터는 벌금을 미납해 옥살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자 없이 돈을 빌려주는 비영리단체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을 맡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만선씨와 자녀 수현·용빈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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