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장기미제 사건 증가세…법원장이 직접 팔 걷었다

법관 부족 등 이유로 법원장이 장기미제 사건 처리

김수일 제주지방법원장. 고상현 기자

제주에서 사건 수에 비해 법관이 부족한 이유 등으로 재판이 지연되는 '장기미제' 사건이 늘고 있다. 급기야 행정업무만 맡아온 제주법원장이 직접 장기 미제 사건 처리에 나섰다.
 
17일 오후 3시 제주지방법원 501호 법정. 김수일 법원장이 제7민사부 재판에 나섰다. 이날 김 법원장은 2021년 2월 접수된 '유류분반환 청구의 소송' 등 모두 8건의 재판을 진행했다. 
 
대부분 소장이 접수된 지 2년 6개월 안에 선고되지 않은 장기 미제사건들이다.
 
김 법원장은 재판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제주는 최근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이에 따라 사건 수도 덩달아 늘었다. 하지만 판사 수가 적어 판사들의 업무량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일부 사건은 적체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법원장으로서 책임을 느낀다.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2월부터 저도 장기미제 사건을 중심으로 재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법원장은 "장기적으로 판사 증원이 시급하다. 미국 연방법원 등 외국과 비교해서 보면 우리나라 판사 1명당 사건 수가 굉장히 높다. 법 개정을 통해 증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법원 사법연감 등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제주지방법원 형사 합의부(판사 3명)에서 맡은 사건은 1059건이다. 형사 단독사건은 판사 1명당 평균 1187건의 사건을 처리했다. 
 
민사 합의부의 경우 302건, 민사 단독사건은 판사 1명당 평균 646건을 재판했다.
 
김수일 제주지방법원장. 고상현 기자

사건 종류별로 판사 한 명당 적정한 사건 수 기준은 없지만, 재판 심리부터 자료 검토, 판결문 검토까지 수백 건을 신속하고 충실하게 처리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한 환경에 놓인 것이다.
 
실제로 도내 주요 재판의 경우 아직 첫 재판 일정도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있다.
 
지난해 12월 외국인 여성 성매매 혐의로 불구속 재판에 넘겨진 강경흠 전 제주도의회 의원 사건 재판은 형사 3단독에 배정됐지만, 4개월이 넘도록 첫 재판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다.
 
농사를 짓지 않는데도 허위 농지취득 자격증명서를 발급받은 혐의로 지난해 11월 기소된 강병삼 제주시장 사건은 형사1단독에 배정됐지만, 5개월이 넘도록 첫 재판이 열리지 않고 있다.
 
법원장들이 재판에 투입된 것은 지난해 12월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이 내놓은 '재판 지연' 해결책의 일환이다. 제주뿐만 아니라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도 법원장이 직접 재판을 하고 있다.
 
재작년 발의된 '판사증원법'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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