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 테러'로 되짚어보는 부산 평화의 소녀상 수난사

6일 소녀상에 검은 봉지 씌운 후 '철거' 마스크 붙인 30대 남성
'우여곡절 건립' 후에도 각종 위협 행위 잇따라
테러 자리엔 손수건과 양말…부산 시민들이 세우고 지키는 소녀상
시민단체 "가리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역사, 계속해서 지키고 바로 세워야"

최근 '봉지 테러'가 있었던 부산 평화의 소녀상에 누군가 핑크빛 손수건과 양말을 입혀준 모습. 김혜민 기자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또 다시 '봉지 테러'가 발생하는 등 위협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소녀상을 지켜온 시민들은 부산시민 모두가 세운 소녀상을 지키는 것이 우리 역사를 기억하고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집회 신고 거부당하자 검은 봉지 씌워…30대 남성 경찰 조사


17일 부산 동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달 초 평화의 소녀상에 검은 봉지를 씌운 A(30대·남)씨는 앞서 집회 신고가 거부당하자 이런 행동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일주일쯤 전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취지의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관련 법률에 따라 일본영사관 인근 일부 구역에서 집회를 제한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A씨는 지난 6일 평화의 소녀상과 강제징용노동자상에 찾아가 검은 봉지를 씌운 뒤 '철거'라는 빨간색 글씨가 적힌 마스크를 붙였다. 인근에 있던 경찰은 해당 남성을 즉각 제지하고 검은 봉지를 수거했다.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한 30대 남성이 검은 봉지를 씌운 모습. 연합뉴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부산겨레하나는 A씨를 재물손괴와 모욕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고발 내용에 대해 조사를 벌이는 한편 소녀상 앞 경비를 강화해 기습적인 훼손 행위 등에 대비하고 있다.

부산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A씨에게 재물손괴와 모욕 혐의를 적용해 조사하는 등 법적 처벌을 검토할 계획"이라며 "동구청에서 소녀상에 대한 시설물 보호 요청이 있어 바리게이트를 설치하는 등 기습 행위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녀상 막은 지자체…설치부터 '난항'


부산 일본영사관 후문 앞 평화의 소녀상은 2015년 12월 28일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를 규탄하기 위해 세운 조형물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 활동에 나선 결과 206개 시민단체와 시민 5332명이 동참해 8500만 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모았고, 위안부 합의 체결 1년이 지난 2016년 12월 28일 소녀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관할인 동구청은 도로교통법 위반 등 위법성이 있다며 평화의 소녀상을 강제로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 관계자 등 10여 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되는가 하면 구청 홈페이지와 민원 창구가 마비되는 등 충돌과 갈등이 빚어졌다. 구청은 표면적으로는 '위법성'을 이유로 철거에 나섰지만 사실상 우리 정부와 일본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십자포화를 맞았다.  

이후 구청이 철거한 소녀상을 야적장에 방치한 사실까지 추가로 드러나면서 비판은 더욱 거세졌고, 결국 구청은 소녀상 반환했다. 소녀상은 사흘 뒤 다시 원래 자리에 설치돼 제막식까지 무사히 마쳤다. 시민들은 '소녀상을 지키는 시민행동'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소녀상 곁을 직접 지켰다.


설치 이후에도 각종 위협 행위 잇따라…왜 반복되나


평화의 소녀상은 우여곡절 끝에 설치된 뒤에도 흑색선전물과 쓰레기 투기, 각종 훼손과 위협으로 몸살을 앓았다.

2017년에는 한 30대 남성이 소녀상 인근에 각종 쓰레기와 폐가구, 폐화분 등을 버렸고,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을 설치하겠다며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2020년에는 소녀상에 자전거를 철근 자물쇠로 묶어두는 일도 발생했다. 또 누군가 '박정희'라고 쓴 천과 나무막대기를 투척하는 등 수년간 소녀상을 훼손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부산 평화의 소녀상에 한 남성이 자전거를 철근 자물쇠로 묶어둔 모습. 소녀상을지키는부산시민행동 제공

부산시 관계자는 "매년 민간 지킴이단을 모집해 지킴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고 순찰 활동 등 관리 카드도 작성해 관리하는 등 관련 조례에 따라 관리하고 있지만 상시 자리를 지킬 순 없다 보니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은주 부산겨레하나 공동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세력들이 괴롭힐 수 있는 게 소녀상"이라며 "시민들이 힘을 모아 세운 소녀상을 계속 훼손하고 싶어하고 그걸 논쟁화시켜서 문제시하려는 게 이같은 테러 행위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진시원 교수는 "극우 세력의 가치관이 소녀상 위협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고 특히 한두 사람의 퇴행적인 행위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면서 "보수 정부나 기초단체장이 들어올 때마다 한일관계에 눈엣가시가 되니까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한일간 역사는 정치적인 판단으로 접근하기보단 시간을 가지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테러 자리엔 손수건과 양말…부산 시민들이 세우고 지키는 소녀상

최근 '봉지 테러'가 있었던 부산 평화의 소녀상에 누군가 핑크빛 손수건과 양말을 입혀준 모습. 김혜민 기자

최근 봉지 테러 이후 소녀상에는 핑크빛 손수건과 양말이 씌어져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평화의 소녀상의 설립 의미를 되짚으며 소녀상을 계속 지키는 것이 우리 역사를 기억하고 지키고 바로 세워나가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지은주 대표는 "소녀상을 보호하기 위한 조례가 통과되고 수차례 개정을 거쳐 실질적으로 기능하기까지 사실상 '시민'들이 소녀상을 지켜왔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거나 부정하려는 세력이 여전히 있지만 소녀상에는 일본 정부가 아무리 가리고 싶고 지우고 싶어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역사가 강하게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일위안부 합의를 무효화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요구가 있었고 엄청난 반대를 뚫고 일본영사관 앞이라는 가장 상징적인 장소에 소녀상을 세워낸 것이기 때문에 이는 부산 시민들의 자부심"이라며 "문제해결을 위해 싸워온 당사자의 정신을 끝까지 기억해서 과거사에 대해 일본이 정확하게 인정하고 사죄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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