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을 중심으로 해병대원 순직 사건 외압 의혹을 둘러싼 특별검사(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한 가운데 관련 사건을 수사해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이목이 쏠린다.
석달 째 지휘부 공백 사태를 맞은 공수처는 특검법이 통과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16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야권은 연일 여당과 국회의장을 향해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 특검법' 본회의 처리를 압박하고 있다. 박주민 민주당 원내부수석은 전날 22대 총선 당선인 및 같은 당 의원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가 50일 가량 남았다"며 "채 상병 특검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5월 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이를 위해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에서도 기류 변화가 감지되는 분위기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2일 한 방송 인터뷰를 통해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처리 시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총선으로 22대 국회 원내 3당으로 올라설 조국혁신당도 힘을 보태고 있다. 전날 김보협 대변인 명의 논평을 통해 "현재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 4월 3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상태로 국회 계류 중"이라며 "굳이 22대 국회 개원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촉구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 여름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에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에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된 만큼,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쥐고 있던 '공'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셈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에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시킨다는 계획이다.
공수처로선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반년 이상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부담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혹으로만 제기된 부실·늑장 수사가 확인되면 설립 4년 차 수사기관으로서의 위상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검사 출신이자 2002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 파견 경험이 있는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못 한다는 지적이 나올 때 비상설적으로 특검을 하다가 대안으로 나온 게 공수처였는데 결국 또 특검이 나온다는 건 공수처로선 부끄러워야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 교수는 "공수처도 상황이 이렇게 되면 긴장하고 서둘러 수사를 하게 될 것이라, 이런 견제 역할이 특검의 순기능인 면도 있다"면서 "검찰이 수사에 대해 받던 평가를 공수처도 받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수처가 맞이한 난제를 헤쳐나갈 수장이 석 달째 없는 점은 제도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 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1월 말부터다.
윤 대통령이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 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