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빠져나갈 건 그것밖에 없어요"
그렇게까지 오심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세계 최초로 KBO 리그가 도입한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박살이 났다. 심판 때문이다.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는 지난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2024 신한 SOL뱅크 KBO 리그' 주말 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펼쳤다. ABS 신뢰도 추락의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경기다.
논란의 장면은 3회말부터 시작됐다. NC가 1 대 0으로 앞선 3회말 삼성의 공격. 삼성 이재현 타석 당시 NC 투수 이재학의 2구째 직구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고, ABS 판정도 '스트라이크'였다.
하지만 주심의 판정은 '볼'이었다. 이재현 타석 뒤 NC 강인권 감독이 항의했는데 심판진은 "규정상 다음 투구가 시작하기 전에 항의해야 한다. '어필 시효'가 지나, 원심대로 진행하겠다"고 판정 이유를 설명했다.
문제는 이 설명이 있기 전 심판진끼리 나눈 대화에 있었다. TV 중계에 "음성은 분명히 볼로 인식했다고 하세요. 우리가 빠져나갈 건 그것밖에 없어요"라는 이민호 심판조장의 대화 음성이 그대로 송출된 것이다.
경기는 재개됐고, 해당 이닝에서 삼성은 동점에 이어 역전까지 성공했다. 결국 삼성이 12 대 5로 NC를 크게 이겼다.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스포츠 심판들. 하지만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승부 조작'을 행하는 모습에 팬들의 울화통이 터지고 있다.
ABS 도입을 누구보다 반겼던 건 바로 팬들이다. 심판들의 이해할 수 없는 볼-스트라이크 판정 논란은 매 시즌 불거져 왔기 때문. ABS는 적어도 판정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게 해줄 줄만 알았다.
그러나 기계의 판정마저도 거역한 심판들이었다. 이 사태에 팬들은 분통이 터진다.
NC 팬 A 씨(33)는 15일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어떠한 판정도 못 믿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그동안 경기 중에도 ABS 결과가 잘 들리지 않는다면서 심판끼리 소통하는 경우를 더러 봤다. 하지만 이 사태 이후 심판끼리 판정을 짜고 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떤 판정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피력했다.
심판들에겐 "잘못을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A씨는 "앞으로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건지 직접 얘기해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또 다른 NC 팬 B 씨는 "ABS 결과가 더그아웃에 바로 전달되지 않아 감독이 바로 항의할 수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심판진은 이미 '어필 시효'가 지났다며 원심을 유지했지만 NC 측은 태블릿에 판정 신호가 전달되기까지 시간 지연이 있었다는 입장이다.
의도치 않게 판정 이익을 보게 된 삼성 팬들 역시 승리가 떨떠름할 뿐이다. 삼성 팬 강지홍 씨(32)는 "부끄럽게 이긴 것 같아서 찝찝하다"고 아쉬워했다. 강씨는 "그 이닝에 동점, 역전을 다 했다. 해당 판정으로 경기 흐름이 바뀐 게 맞다"고 돌이켰다.
이어 강 씨는 "우리 팀도 언젠가 이러한 판정 불이익을 겪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향후 유사 사태에 대한 강력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핏대를 세웠다. 그러면서 "심판진에게 엄중한 처벌이 내려지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ABS를 도입한 이유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팬들의 분노가 섞인 목소리는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도 "ABS 도입 첫해라 실수가 있을 건 예상했으니, 사과하면 될 일을 왜 조작해서 일을 크게 만드느냐", "기계는 거짓말을 안 한다. 이 사건 뿌리를 뽑아야 한다", "승부 조작 주범 심판 퇴출 요구가 거셀 것"이라는 등 심판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세계 최초 ABS 도입 이후 체계가 자리를 잡아가던 중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팬들은 ABS 도입 이후 '적어도' 판정으로 인한 피로감은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심판진의 안일한 오심 대처가 또다시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