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350원선 안팎에서 등락하며 작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이 올해 이른 시기에 기준금리를 낮추기 시작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이 빗나갈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다시 달러 가치가 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치솟는 유가도 물가 불안을 자극하고 있어 당분간 위험자산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달러 등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5.7원 상승한 1352.8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작년 11월1일(1357.3원) 이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의 통화정책 조기 전환 가능성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던 작년 말 원·달러 환율 종가(1288.0원)와 비교하면 상승폭이 64.8원에 달한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주요 인사들을 중심으로 시장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 심리를 견제하는 취지의 메시지가 쏟아진 게 최근 달러 강세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에도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전년 대비 2%)으로 둔화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언급하며 "(그 전에는) 기준금리를 낮추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보다 나아가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이튿날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이 계속 횡보하면 금리 인하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게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물가 불안이 고금리 기조의 명분이 되고 있는 만큼, 최근 치솟는 국제유가 역시 '고금리 장기화'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고유가는 물가를 끌어올리는 주요 요소이고,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선 고금리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란이 자국 영사관 폭격의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하는 등 중동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된 영향으로 4일(현지시간) 유럽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6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5개월 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다.
이런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반영되면서 당장 6월부터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고 공격적으로 주식, 비트코인 등 위험자산에 베팅했던 투자자들의 심리는 달러 등 안전자산 선호 쪽으로 서서히 변하는 기류다.
금융권에선 달러 강세가 당분간 지속되고, 그 정도도 현재보다 심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연준 금리 인하가 가시화되기 전까지는 현재 환율 수준이 유지되거나, 시장의 인하 기대가 보다 약화되는 등 경우에 따라서는 추가 환율 상승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정 위원은 "(강달러 흐름이) 전환되는 때는 3분기 후반 연준 금리 인하 기대가 본격화되는 시기 이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달러 강세를 가속화 할 수 있는 단기 주요 변수로는 한국시간으로 오는 10일 밤 발표되는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꼽힌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3월 CPI 상승률(전년 대비) 예상치는 블룸버그 기준 3.5%로, 작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전망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투자자들의 금리 인하 기대가 더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한편 '금리 긴장'이 번지면서 4일(현지시간) 뉴욕증시 주요 지수들은 일제히 하락했다. 특히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35% 내리며 올해 들어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다.
이어 코스피 지수도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깜짝 호실적 발표에도 전 거래일보다 1.01% 하락한 2714.21에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