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종섭의 사퇴, '제궤의혈'의 일단락이 아니다

'해외 도피' 논란을 일으킨 이종섭 전 호주대사. 인천공항=박종민 기자

제궤의혈(堤潰蟻穴), 작은 잘못을 소홀히 하다 결국 일을 크게 그르치고 만다는 의미의 고사성어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과 뜻이 통한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과 정치적 파장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돼버렸다. 결정의 순간마다 악수(惡手)를 둔 이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시작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19일 해병대 제1사단 소속 채수근 일병(추서 전 계급)이 대민지원 작전에 투입됐다가 목숨을 잃었다. 폭우가 쏟아진 경북 예천군의 내성천에 실종자 수색 현장에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결국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이다. 호우 속 급류에 투입된 해병대원이 구명조끼만 입었더라도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채수근 일병의 부친은 "구명 조끼가 얼마나 한다고 그것도 안 입혔느냐, 이건 살인 아니냐"면서 절규했다.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대통령의 말을 받아 해병대수사단이 수사에 나섰다. 열흘간 이어진 수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긴급하게 현장에 투입되어 안전장구를 갖추지 않았고, 사단장 지적 사항 등으로 예하 지휘관이 부담을 느껴 허리 아래 입수를 지시해 사망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수사단은 사단장을 비롯한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관할 것이라 보고했고, 이종섭 국방부장관은 이를 직접 승인했다.

돌아보면 이때부터 엇나간 결정들이 이어졌다. 7월 31일 월요일, 해병대 사령부는 언론 브리핑 한시간 전 돌연 일정을 취소했다. 이에 대한 논란은 여전한 가운데 그 급박한 상황 변경 과정에 이종섭 국방부장관이 대통령실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단장에게도 책임을 묻는 수사 결과에 격노했다는 전언이 나왔다. 국방부는 조사 결과의 경찰 이첩 중단을 지시했고, 그럼에도 사건을 경찰에 넘긴 해병대수사단 박정훈 대령을 보직해임하는 한편 집단항명수괴 혐의로 입건까지 했다. 국방부는 이후 '순직사고 재검토 결과'를 발표했는데, 예상대로 임성근 사단장 등은 책임 범위에서 빠졌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황진환 기자

이렇게 순직 사건 <책임 범위 논란>은 <수사무마 외압 의혹>과 <내부고발자 찍어내기> 갑론을박으로 번졌다. 수사 외압 의혹 피의자인 이종섭 장관을 윤석열 대통령이 호주 대사로 임명하면서 <핵심인물 빼돌리기 논란>이 제기됐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이에 반발하자 대통령실은 '고발 내용 검토 결과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혀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도 낳았다.

총선 국면에서 여론의 민심이 악화되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종섭 소환'을 주장하고 나서 <윤-한 갈등 논란>이 퍼졌으며, 이종섭 대사의 자연스런 귀국 명분을 위해 <방산협력 공관장 회의를 급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결국 이 대사가 내정 25일만에 사퇴하면서 우리나라는 논란 속 인물을 주요국의 '최단명 대사'로 앉혔다는 <외교 결례>까지 남기게 됐다. 나아가 이 전 대사의 임명 취지인 '방산 협력 강화'와 정반대로 <방산 협력 타격 염려>도 일어날 판이다.

선택의 기로 때마다 '하지 않아야 할 결정'만 골라 내린 이가 대체 누구인지 궁금할 정도다. 부정적 파장과 후폭풍을 짐작 못했다면 그보다 더 아둔할 수 없고, 그럼에도 강행하려 한 것이라면 국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보다 더 오만할 수 없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 것은 자명하고, 이제 정권은 또다른 선택과 결정을 앞두고 있다. 이종섭 전 대사의 사퇴로 일련의 사건이 일단락되지 않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공수처뿐만 아니라 국민도 '무리한 꼼수들이 왜 이어져야 했는지'를 따져 물을 것이다. 이제 재개되는 진실 규명의 첫 단추는 2023년 7월 31일 오전 11시 45분, 이종섭 당시 국방장관이 받은 유선 전화통화의 내용이다. 발신자 '대통령실(가입자명)'로부터 걸려온 그 전화를 누가 왜 했길래, 그는 전날 자신의 결정을 뒤집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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