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지난해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연 전시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가 호평받은 이후 국제갤러리, 미국계 리먼머핀과 공동 소속계약을 체결했다. 작가가 대형 상업 갤러리와 손잡은 건 60년 화업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오는 4월 개막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본전시에도 참여한다.
지난 19일에는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작가의 개인전 'Kim Yun Shin'이 개막했다. 한국으로 터전을 옮긴 후 첫 번째 전시를 여는 작가는 이날 간담회에서 "화업 인생의 마지막을 한국에서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모든 분께 고맙다"며 감개무량해 했다.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건 1984년이다. 작가는 "상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였다. 조카가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어 방학을 이용해 방문했다"며 "드넓은 땅에 아름드리 나무들이 있는데 신기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좋은 재료가 많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정착했다"고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 현대미술관 관장과의 만남이 전환점이 됐다. "이곳에서 전시를 하고 싶어서 두 달 만에 작품 두 점을 끝냈어요. 작업할 곳이 없으니까 나무를 주워 동네 한길에서 전기톱을 사서 작업했죠. 그때 전기톱을 처음 써봤어요."
작품을 본 관장은 바로 전시를 승낙했다. "관장 생활을 30년했지만 나무의 겉껍질을 살리고 속을 파내는 조각 기법은 처음 본다고 했어요." 전시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 현대미술관 식물공원에서 두 달간 진행했다. 그 후 전시 요청이 쇄도하면서 작가는 교수가 아닌 예술가의 삶을 택했다.
200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김윤신 미술관이 개관했다. 2018년에는 주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에 작가의 상설전시관이 생겼다.
전 세계를 누비며 작업해 온 작가는 "'동서남북 작가'로 남고 싶다. 동(東)으로 가나, 서(西)로 가나 항상 같은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자연재료의 물성, 특히 나무의 속성을 존중하며 조각 작업을 해왔다. 조각 작업의 근간이 되는 철학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 分一·둘을 합해도 하나가 되고 둘을 나눠도 하나가 된다)은 작업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나무를 관조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해요. 며칠 동안 나무를 바라보며 충분한 대화를 나눈 다음 단번에 전기톱으로 자르죠. 나무와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 합과 분을 느낄 수 있어요."
조각 연작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1970년대 작품 '기원쌓기'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일제강점기에 6남매를 둔 오빠가 행방불명된 후 엄마가 매일 새벽 물을 떠놓고 무사귀환을 빌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를 쫓아가서 돌을 놓고 왔다"며 "'기원쌓기'는 엄마가 자식을 위해 하늘에 기도하는 형상이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나무를 깎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회화는 선과 면이 입체적으로 분할돼 있고 남미의 토속색과 한국의 오방색이 섞인 느낌이라 자유분방하면서 역동적이다. '이루어지다' '내 영혼의 노래' '원초적 생명력' '기억의 조각들' 같은 회화의 제목에서는 작가의 인생이 묻어난다.
간담회 내내 웅숭깊은 '나무 사랑'이 느껴졌던 작가는 "나무는 말이 없지만 살아 있다. 숨을 쉰다"며 "형태만 다를 뿐이지 사람이나 나무나 생명이 있는 존재라는 건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작가가 답변했다. "한 마디로 예술은 끝이 없어요. 완성이라는 말을 쓰기 힘들죠. 그런 점에서 예술은 우리 삶과 똑같아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