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유고 강연집을 엮은 '탱고: 네 개의 강연'이 국내 출간됐다. 그의 사후 30년 만에 세상에 나온지 7년 만에 국내 소개되는 번역판이다.
이 책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춤이자 남미만의 독특한 문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탱고에 관한 강연 녹취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보르헤스의 이름을 딴 탱고쇼가 있을 정도로 그의 탱고 사랑과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보르헤스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1965년 부에노스아이레스 82번지에서 10월간 매주 월요일, 4회에 걸쳐 '탱고'에 대한 강연 녹취록이 2002년 우연히 베르나르도 아차가라는 소설가에 의해 발견되면서 2016년 강연집으로 출간됐다. 20세기 세계 문학을 대표하는 보르헤스가 아르헨티나의 정신을 형성한 탱고에 대한 찬사와 시대상, 역사가 담겨 있다.
보르헤스는 189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1920년대에 '도시의 아방가르드(남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극단적인 모더니즘 운동)'를 주도했다. 1930년대에는 단편 소설을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등 주로 산문을 쓰면서 문학 세계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시와 논픽션, 이야기체 수필을 넘나들며 대표적인 작품집 '픽션들'(1940)과 '알레프'(1949)를 남겼다.
영렬한 독서가였던 그는 '20세기의 도서관', '사상의 디자이너'라 불리는가 하면 도서관, 미로, 나침반, 시간, 기억, 거울 등 형이상학적인 주제로 전 세계 독자들에 각인됐다.
보헤르스는 1929년 시인 에바리스토 카리에고 연구를 계기로 탱고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탱고의 어원을, 유행의 변화를,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레오폴도 안토니오 루고네스 등 당대 유명 작가들의 작품 속에 숨은 탱고의 흔적을 특유의 해박한 지식과 애정으로 탐색해 나간다.
그에 의하면 188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가난한 동네, 밀롱가 매음굴에서 시작된 파렴치하고 수치스러운 뿌리를 지닌 탱고는 '부잣집 도련님들' 즉 젊은 불량배들에 의해 파리로 옮겨 갔고 그곳에서 품격이 부여된다. 그러고 나서야 탱고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전역에 유행하게 된다.
그는 책으로 남은 강연을 시작하며 청중들에게 이 자리가 강연이 아니라 '대담'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건네기도 하고 강연을 마칠 때면 겸손하게 강연을 마무리하고 같이 탱고를 듣자고 권하기도 한다. 이 책이 특별한 점은 다정하고 인간적인 보르헤스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 문학의 지성, 그 본령의 보르헤스가 역사의 변천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탱고를 통해 비록 가난하지만 '용기'를 택했던 그 시절을 길어올린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