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발끈했다. "내가 성평등 걸림돌이라고?" 오 시장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지난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평등 걸림돌 7곳 중 하나로 거론됐다. 그러자 서울시는 대변인 논평을 내고 "오 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 여성친화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와 이해도 없는 행동"이라고 맞받아치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오 시장은 그 누구보다 여성 정책을 활발히 내놓고 있다고 자부하는 지자체장이다. 디지털 성범죄 안심지원센터나 스토킹 피해 원스톱지원센터 같은 '전국 최초' 정책들이 이를 증명한다. 여성용 SOS 비상벨을 들고 다니며 기회 있을 때마다 고리를 잡아당겨 작동 시연을 하고 받아 가시라고 시장이 직접 홍보를 하고 다닌다. 그런데 '성평등 걸림돌'이라고? 억울할 법도 하다.
이른바 '여성친화정책'을 펼치는 이면으로 오 시장은 일부 여성단체들과는 매번 충돌을 빚었다. 지난해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공원 '기억의 터'에 있던 민중미술가 임옥상 작품 2점을 철거하는 과정에서도 이를 막아선 정의기억연대 및 여성단체 회원들과 마찰을 빚었다. 당시 오 시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단체가 성추행을 인정한 작가의 작품철거를 막아섰다"면서 "시민운동이 우리편들기 운동이 되었다"며 맹비난을 쏟아낸 바 있다.
일단 이번 성평등 걸림돌 선정을 놓고 양측 벌인 설전에서 해묵은 감정을 걷어내면, 이번 논쟁의 본질인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이라는 뼈대가 드러난다. 필리핀 등 동남아에서 '이모님'을 모셔와 아이돌봄 비용을 낮춰보자는 구상은 2년 전인 2022년 9월 오세훈 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육아도우미' 도입 제안으로 본격화됐다.
단순한 제안에 그치지 않고, 서울시가 나서서 6개월 시범사업을 해보겠다고 앞장섰으니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오세훈 표 정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다. 여러 논의와 정책설계를 거쳐 당초 지난해 연말부터 시범사업을 해보겠다고 구체적인 윤곽까지 나왔다. 현재 송출국인 필리핀과 우리 정부와의 협상이 길어지면서 연기됐지만. 올해 안에는 100명의 필리핀 이모님들이 한국 땅을 밟을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가격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육아 도우미 비용이 264만원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육아를 맡아주는 이모님을 전일제로 모시면 300만원이 넘는 것이 현실이다. 필리핀에서 오는 '가사 관리사'의 경우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월 208만원 정도가 된다. 100만원 내외의 비용이 절감되기는 하지만 아이를 막 출산한 젊은 부부들의 소득으로 이것이 감당 가능하겠느냐 하는게 논의의 핵심이다.
오 시장은 물론 한국은행도 가격을 더 떨어뜨려야 한다는 쪽에 섰다. 이대로 놔두면 육아 뿐 아니라 부모 간병 등 각종 돌봄비용이 급증하는데 결국 가족들이 돌봄에 나설 수밖에 없고, 그러면 경제활동인구가 그만큼 빠져나가 2042년에는 GDP의 2.1~3.6%에 달하는 경제 손실이 날 것이라고 한은은 예측했다. 비용을 낮추면서 국제노동기구 협약 위반을 피하기 위해서는 홍콩처럼 개별가구와 직접 계약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돌봄서비스업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법을 도입하자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됐다.
이에대해 노동계와 이주단체들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자 착취를 정당화하는 반인권적 사고'라고 반발한다. 결국엔 내국인 노동자 노동환경마저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가사 분담 등에서 보다 양성평등적인 환경을 갖추는게 우선이라는 여성단체들의 주장도 만만치않다. 돌봄은 여성의 일이며 값싼 노동이라는 이미지가 고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성단체연합이 오 시장을 성평등 걸림돌로 선정하면서 "가사노동 가치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사회 규범에 역행했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찬반은 팽팽하다. 사실 시범사업은 그래서 하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문호를 열기 전에 100명 정도 작은 규모로 운영해보고 우리 현실에 맞는지, 최적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는 것이다.
실제로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는 방안도 나온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위탁을 맡은 민간사업자들은 이미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면서도 비용부담이 없는 방안을 찾아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플랫폼 기술을 활용해 시간제로 운영하는 방법이다. 사실 막 출생한 아기는 육아휴직 등을 활용하면 1년 정도 온전히 맡을 수 있다. 가장 어려운 시기는 육아휴직이 끝났는데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하고 놀이터를 가고 밥을 챙겨줘야 할 사람이 없을 때다. 자녀가 초등학교를 갈때도 비슷한 돌봄 공백 문제가 발생한다.
가사관리 플랫폼 앱의 형태를 갖춰 시간제로 운영하면 꼭 필요한 시간만 가사관리사를 쓰면되고 비용 부담은 절반 가까이 낮출 수 있다. 가사관리사 입장에서도 아파트 단지 1개 정도 안에서 이동한다면 하루 2-3가정 정도는 담당할 수 있어 최저임금을 무난히 지킬 수 있다. 두 가정이 한 명의 가사관리사를 공동 고용하는 등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최저임금이라기 보다는 플랫폼을 돌릴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인력공급이다. K팝과 K드라마로 이미 한국 문화에 익숙한데다 임금도 훨씬 높다는 얘기에 홍콩과 싱가포르에 있는 가사관리사들도 한국행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하지만 임금이 홍콩 수준에 불과하다면 굳이 더 멀고 문화도 다른 한국행은 선택지에서 제외될 것이다. 또 최저임금보다 돌봄비용이 더 낮아지면 이탈과 불법취업 위험이 발생하고 이를 방지할 비용이 더 들어간다.
최저임금을 보장하더라도 충분한 인력만 공급된다면 그 다음은 시장이 수요와 공급에 맞춰 최적화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한지를 시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시범사업이다. '걸림돌'이라는 오명을 썼지만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의 첫돌을 놓고 시범사업으로까지 확장한 오 시장의 노력은 인정해야한다. 오 시장은 최근 "지팡이는 들기 편해야 의미가 있지 무쇠로 지팡이를 만들어 봐야 쓸모가 없다"고 자신의 SNS에서 썼다. 외국인 가사 관리사는 우리 미래의 지팡이가 될 것인가. 이제는 지팡이를 쓸거냐 말거냐가 아니라 그 지팡이를 정말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