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추진 여파로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가 전체 약 9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계에서는 일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병원에 남은 의사들을 타깃 삼아 공격하고 조롱하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정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전공의·의대생을 최대한 보호하겠다며 "특정 직역의 반대로 의료개혁이 좌초되는 과오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보름을 넘긴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1200억대 예비비를 편성한 데 이어 이달부터 매달 2천억에 가까운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 '비상진료'를 유지하기로 했다.
예비비 이어 月1800억 건보 투입…'장기전' 대비 비상진료 정비
보건복지부는 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통해 지난달부터 가동된 비상진료체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월 1882억 원 규모의 건보 재정을 추가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공의 대거 이탈로 인한 의료공백이 예상보다 장기화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기존체계 지원 연장과 함께, 전원·이송체계 보강 및 응급전문의 등에 대한 보상 신설 등을 새롭게 반영한 것이다.
건보 재정을 활용한 신규 지원은 오는 11일부터 적용된다.
우선 비상진료 기간 중 상급종합병원 등이 본연의 기능인 중증 중심 진료에 충실할 수 있도록 관련 체계를 유지하고 적극 진료한 병원에 대해 사후 보상을 추진한다. 종합병원 등 중소 의료기관으로 경증환자를 회송할 경우 해당 보상도 추가 인상한다.
응급·중증도에 맞는 치료로 상급병원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한 회송 관련 수가는 앞서 이미 30%를 올렸지만, 여전히 현장의 어려움이 많다고 보고, 30~50%로 한 차례 더 인상하기로 했다.
병원 내 중환자나 응급상황에 신속 대응할 수 있도록 교수 등 전문의가 중환자 진료 시 정책지원금을 신설한다. 또한 일반병동에서도 심정지 등 응급상황이 생기면 조기 개입 및 적시치료가 이뤄질 수 있게 신속대응팀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고 참여 기관도 확대할 예정이다.
응급환자의 신속한 전원과 더불어 응급의료체계가 '24시간' 원활히 유지될 수 있도록 관련 보상도 강화한다. 중증환자가 병상을 빠르게 배정받을 수 있게 보상을 신설하고, 심폐소생술 등 응급실에서 이뤄지는 의료처치 등에 대한 가산도 대폭 인상한다.
이중규 중앙사고수습본부 현장소통반장은 건보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질의에 대해 "비상진료 대책의 일환으로 1800억 재정을 한시 투입하는 것은 일단 1개월에 한해 투입할 예정"이라며 "현재 전반적인 건보 재정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 재정범위 내에서는 충분히 (운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초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서 비필수과에 비해 처우가 열악한 필수 진료과에 공정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2028년까지 약 10조 이상의 건보 재정을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복지부는 이달부터 중증소아·분만·중증응급 등의 분야에 연간 1조를 투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조만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산모와 신생아, 중증질환 진료 등에 1200억 규모의 건보 재정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진료센터 보상 강화 △지방의 신생아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에 대한 공공정책수가 신설 △소아외과 계열의 수술·마취 관련 가산 대폭 확대 등을 언급했다.
정부는 전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예비비 1285억(복지부 1254억·국가보훈부 31억)과 관련, "모든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비상진료체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예비비는 주로 야간·휴일 당직 등 전공의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의료진의 인건비, 공보의·군의관 파견, 병원별 추가인력 채용 등에 지출될 예정이다.
전공의 약 92% 현장이탈…'미복귀 장단' 따른 선처 여지 남겨
복지부가 서면 점검을 통해 주요 100개 수련병원 현황을 점검한 결과, 전날 오전 11시 기준 소속 전공의(1만 2225명)의 91.8%인 1만 1219명이 계약 포기 및 근무지 이탈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현장점검 결과, 미복귀가 확인된 전공의들에 대해선 업무개시명령 위반을 적용해 지난 5일부터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등기우편으로 발송 중이다.
전병왕 중대본 제1통제관(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선처' 가능성을 두고 "미복귀 기간의 길고 짧음에 따라, 똑같은 처분을 하는 게 맞는 것인지 등은 다시 또 검토하지 않을까 싶다"고 여지를 남겼다.
다만 "현재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처분을) 진행하고 있고, 사전처분 예고가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가급적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들이 조속히 복귀해 본인의 불이익을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필요한 분들이 의료를 제때 받을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강조했다.
중대본은 아직까지 의료체계에 큰 혼란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날 정오 기준으로 응급실 일반병상 가동률은 29%, 중환자실 병상 가동률은 71% 수준으로, 집단행동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주요 5대 병원의 중환자실은 축소 없이 운영 중이고, 응급실은 중증 위주로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전 통제관은 "이런 상황이 계속 진행되면 장기적으로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 관련 진료를 담당하고 중등증·경증은 2차 병원 등으로 역할을 (아예) 분담해야 될 것"이라며 "(1차 병원에서) 2차 병원을 거쳐 상급종합병원으로 가는 것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일부 온라인 의사 커뮤니티에서 집단 사직에 동참하지 않은 전공의를 '참의사' 등으로 조롱한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전 통제관은 "다양한 생각을 치열하게 토론하며 폭넓은 사고를 가지고 성장해야 할 젊은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를 공격한다는 것은 심히 걱정스럽다"며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을 향해 "여러분의 다른 목소리는 지금의 상황을 바로잡고 의료계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