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용 못해 남아도는데…그린벨트를 또 풀어?

진현환 국토교통부 1차관(왼쪽)이 비수도권 지방 그린벨트 규제완화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비수도권에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대규모 해제를 허용하는 정책을 발표했지만, 지방에는 곳에 따라 아직 '풀어 쓸' 물량이 남아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물량도 소진하지 못하는 지방에 추가물량을 얹어주는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24일 국회입법조사처와 국토연구원 등의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광역지자체 권역별로 그린벨트 해제가능총량의 소진율에 격차가 나타난다. '풀어서 쓰라'고 허용된 그린벨트 해제 물량을 제대로 활용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이 갈린다는 얘기다.
 
국회입법조사처의 2022년 9월1일자 '이슈와 논점'에서 다뤄진 2021년말까지의 실적을 보면 부산권이 2차례 걸쳐 부여받은 80.5㎢의 해제가능총량 중 64.4㎢를 해제해 79.9%로 최고 소진율을 기록했다. 이어 수도권(239㎢ 중 189.5㎢)이 79.3%, 광주권(59.5㎢ 중 42.1㎢)이 70.7%로 나타났다.
 
해제가능총량은 수도권 등 7개 대도시권이 2004~2007년 각각 '2020년 광역도시계획'을 수립할 때 각 권역별로 부여됐다. 전국 총량은 342.8㎢였다. 그러다 전국적 개발 압력이 불거져 2009~2012년 대도시권별로 광역도시계획이 변경돼 기존 총량의 10~30% 추가 배정됐다. 전국 총량은 531.6㎢로 늘었다.
 
부산권·수도권·광주권 이외 권역은 소진율 격차를 확인시킨다. 대구권(40.9㎢ 중 20.9㎢)이 51.1%로 과반 턱걸이를 했을 뿐, 창원권(33.6㎢ 중 14.8㎢) 44.1%, 대전권(39.9㎢ 중 16.4㎢) 41.1% 등은 절반에도 못미친다.

아울러 정부가 이번 규제완화 정책 발표 행사를 벌인 울산권(38.1㎢ 중 14.8㎢)은 소진율 38.8%로 꼴지를 기록했다.

도시권역별 그린벨트 해제가능총량과 실제 해제면적 비교표. 국회입법조사처와 국토연구원 연구결과 및 국토교통부 통계 재구성

특히 굳이 광역도시계획을 개정하고 해제가능총량을 추가 배정할 필요가 없는 권역이 다수였다. 2022년까지 수도권(65㎢ 초과)과 부산권(10.1㎢ 초과)만 1차 총량을 넘겨 그린벨트를 해제했다. 소진율 3위였던 광주권조차도 1차 총량에 3.7㎢ 미달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수도권과 부산권을 제외한 나머지 권역에서는 최초 배정된 해제가능총량도 소진하지 못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이에 앞서 진행된 국토연구원의 2017년말 기준 연구에서도 해제총량을 다 쓰지도 못하는 지방 상황이 지적됐다.

국토연구원의 2018년 11월5일자 '국토정책Brief'는 "수도권과 부산권을 제외한 나머지 권역에서는 2차 추가물량 배정이 없었어도 최초 수립된 '2020년 광역도시계획'상 총량만으로도 충분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상황이 2022년 이후 격변했을 가능성은 낮다. 국토교통부 통계누리에서 가장 최근 자료인 2022년말 통계치와 비교하면 해제면적 증가는 창원권(0.2㎢), 수도권·대구권·대전권(각 0.1㎢)에서 있었지만, 모두 소폭에 그쳤다.

아직 지난해 통계치가 안 나왔으나, 지난해는 건설경기가 얼어붙고 대규모 해제를 요하는 토목사업도 딱히 없던 해다.
 
정부는 이번에 '전략사업'의 경우 해제총량에 산입하지 않고, 환경평가 1·2등급지도 해제할 수 있다는 대대적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지자체가 당장 쓸 수 있는 해제총량 잔여 물량은 놔둔 채, 다른 그린벨트를 헐어버리는 난개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국토연구원 연구에서는 "권역 내 개발수요가 낮거나 개발제한구역 내측에 가용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잔여총량 소진을 위해 지가가 낮은 개발제한구역에 개발사업을 추진하려는 시도가 계속해서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이미 지적했다.

2020년말 기준 전국 그린벨트 현황. 국토연구원 월간지 '국토' 2021년7월호 캡처

경실련 도시개혁센터는 정부의 그린벨트 규제완화에 대해 성명을 내고 "규제혁신이 아닌 지속가능한 국토관리의 종말이다. 지역경제 활성화도 모호하고, 산단 조성효과도 불분명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지역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그린벨트의 값싼 토지를 활용하는 것은 '개발시대'의 지역 균형발전 전략"이라며 "규제로 묶여있던 싼 땅을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대규모로 확보하는 전략은 재고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도시계획학 박사인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전문위원은 "이미 개발 가능한 곳은 해제가 많이 돼 있기 때문에 지금 존치된 그린벨트 지역은 사실상 개발불능지가 거의 90%라고 보면 된다"며 "해제총량 미소진 물량도 해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추가 규제완화는 선거용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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