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 사직이 계속되는 가운데, 교통사고를 당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환자가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5시간 넘게 대기하는 등 의료 현장 곳곳에서 진료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22일 경찰과 소방 등에 따르면, 오토바이 운전자인 40대 A씨는 지난 19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의 한 고등학교 앞에서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A씨는 골반에서 다리까지 통증을 호소할 뿐 아니라, 머리까지 부딪힌 상태였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소방은 구급차에 탄 A씨를 오후 5시 35분쯤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하지만 A씨가 도착한 병원에서는 "응급실에 빈자리가 없다"며 A씨를 받아주지 않았다. A씨와 소방관계자들은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이후 5시간 30여 분이 지난 오후 11시 10분쯤에야 치료를 받기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은 "평소에도 환자가 많아 병상이 부족할 때는 좀 기다릴 수 있다. 그래도 보통 1시간 이내"라며 "이렇게 (대기 시간이) 오래 걸린 적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희도 이렇게 오래 기다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결국 4시간쯤 지나자 다른 구급차와 환자를 인계했을 정도"라며 "한 구급차가 병원에 5시간씩 있으면 관내 구급차가 비어버리고, (다른 사고가 발생하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오게 되고, 5분이면 도착할 차가 20, 30분씩 걸려 도착하게 된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도 전공의 사직의 여파가 실제 진료 차질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 곽경선 사무처장은 "만약 응급 환자가 권역별 응급센터 같은 곳에 갔다면 너무 혼잡한 경우들이 발생했을 때는 그럴 수 있지만, 이렇게 평상시에 (5시간 30분 넘게 기다렸다) 하면 여파가 계속 미쳤다라고 보여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병원 관계자는 "(A씨가 응급실을 찾은 19일에도) 전공의 사직을 받긴 했을 것"이라면서도 "A씨의 장시간 진료 대기가 전공의 사직으로 발생한 문제인지, 평상시의 응급실 과밀한 문제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해명했다.
평소 진료 대기시간보다 3배…"오늘만큼 기다린 적 없어"
전공의 사직 사태가 사흘째 이어지면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한탄은 그칠 줄 모른다. 이날 서울대병원에는 길어지는 진료 대기시간으로 한숨을 내쉬는 환자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장모(41)씨는 7년 전 유방암 수술을 했으나 부작용을 앓아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장씨는 "원래도 주치의가 매일 봐주지 않는데 파업(전공의 사직)으로 인력이 모자라서 제때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 못 받으면 생명의 위험도 있을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이어 "의사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두고 뭐라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이 직업을 선택한 만큼 그것에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대구에서 올라와 관상동맥 혈전 수술을 받은 변모(61)씨는 평소 진료 대기시간이 약 40분 정도였는데 이날은 3배가 넘는 1시간 5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안내를 받았다.
변씨는 "평소에도 늘 제시간에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지연되기는 했다"면서도 "그래도 오늘만큼 기다린 적은 없었다"고 답답해했다.
특히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암 환자들은 전공의 사직 사태가 길어지면 앞으로도 계속 진료에 어려움을 겪을까 걱정이 깊다.
신장암 4기인 어머니를 돌보는 김모(47)씨는 "만약 전공의 사직 등 파업이 장기화해 진료가 늦춰지면 안 되기 때문에 불안하다"며 "진료를 못 보게 되면 암 환자들은 그냥 죽으라는 소리"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