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환 열사여, 농성은 마쳤지만…투쟁은 계속된다"

두 명 겨우 들어가는 텐트에서 시작했던 '故방영환씨 농성'…네 달여 만의 해단식
"마음이 막막하다" 털어놓은 노동자들…"시청에서, 국회에서 투쟁 이어나갈 것" 다짐

시민단체 '방영환열사투쟁에함께하는사람들'은 18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양천구 해성운수 앞 농성장에서 해단식이 열렸다. 주보배 수습기자

"동지들! 오랫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누가 보면 이 천막 하나 지키는 것이 어렵겠느냐 하겠지만 삶이 바쁜 와중에 방영환 열사가 결심하셨던 자리를 지키느라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방영환 열사 시민대책위원회 김인자 위원장은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임금 체불에 항의하다 분신해 숨진 택시기사 고(故) 방영환씨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곧 김 위원장은 "방영환 열사 뜻 이어받아 공공택시 실행하자"는 마지막 구호를 크게 외쳤다.
 
서울에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 18일 오후, 서울 양천구의 한 거리에 세워진 한 천막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개 겨울 점퍼에 등산용 운동화를 입은 이들이 10여 명쯤 모이자 누군가 "해단식부터 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이 모인 이 곳에서, 지난해 9월 26일 택시기사 방영환씨가 자신이 일했던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전신 60% 이상에 3도 화상을 입은 방씨는 열흘 만인 10월 6일 숨졌다.

방씨가 몸에 불을 붙였던 이 곳에서, 방씨는 자신이 일했던 해성운수(모기업 동훈그룹)를 상대로 부당해고와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7개월 넘게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방씨가 숨진 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4개월 동안 방씨의 뜻을 이어가겠다며 이 거리를 지켰다.

"이 불씨를 활활 횃불로 태울 수 있고 불사를 수 있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부담을 안고 이 자리를 파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이날 오후 2시가 되자 시민단체 '방영환열사투쟁에함께하는사람들'은 농성장에서 해단식을 시작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서로에게 우산을 나누면서도, 대부분 내리는 비를 그저 맞았다. 모인 이들이 방씨를 추모하고, 농성장을 철거하고, 다시 투쟁을 결의하는 동안 지나가던 택시 기사들과 시민들도 해단식을 지켜봤다.
 
방씨가 분신한 지 일주일만인 지난해 10월 2일, 성인 두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텐트에서 농성이 시작됐다. 농성이 열린 첫날을 회상하던 양규서씨는 "여기서 날마다 촛불 집회를 열었다"며 "(방씨가) 돌아가시고 나서 며칠 있다 지금 보이는 큰 텐트를 설치했다"고 전했다.
 
추운 겨울 4개월 넘게 야외에서 농성을 진행하니 활동가들의 몸은 성한 구석 하나 없었다. 추운 날씨 속에 집회에 참석했다 걸린 동상으로 이한국(55)씨의 왼쪽 귀는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시민단체 '방영환열사투쟁에함께하는사람들'은 18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양천구 해성운수 앞 농성장에서 해단식이 열렸다. 김수진 수습기자

농성장 안에 놓인 캠핑용 의자에 앉아 있던 이씨는 방씨가 분신한 곳을 바라보다 텅 빈 눈동자로 "씁쓸하다"고 입을 뗐다. 이씨는 "마음이 먹먹하다. 지난 날들을 회상해보면 주로 혼자 있던 시간이 많아 지루하기도 했지만, 이곳을 지켜야 하니까 있었다"고 씁쓸해했다.
 
이씨는 농성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동료 집에 가서 두부조림을 만들어 먹었던 날'을 꼽았다. 그는 "같이 밥 먹는 식구잖아요. 식구가 된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참 좋았다"면서도 "원천적으로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다. (농성장은 닫았지만) 다시 투쟁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1시간 가량 이어진 해단식이 끝나자 잠시 멈췄던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씨가 분신했던 곳에서 묵념을 이어가던 이들은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인을 계속 추모했다.
 
묵념을 마친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농성장 안을 채운 집기들을 바깥으로 빼내기 시작했다. 거센 빗줄기에도 사람들이 분주하게 손발을 움직이니 순식간에 가스통, 손팻말, 돗자리 등이 길가에 차곡차곡 쌓였다. 방씨의 딸이 방씨의 유품 중 차마 버리지 못해 농성장에 기증했던 거울과 침대 매트리스도 함께 쌓였다.

방씨가 숨진 후, 해성운수 정모 대표는 근로기준법 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모욕, 상해, 특수협박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정씨는 지난해 3월 24일 해성운수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방씨의 턱을 손으로 밀치고, 4월 10일에는 고인 등에게 폭언과 욕설을 했으며, 8월 24일에는 1인 시위 중인 방씨에게 화분 등을 던지려고 위협하는 등 집회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방씨가 사망한 지 한 달여 뒤인 지난해 11월 3일에는 회사 회의 중 언쟁을 하던 해성운수 전 직원 A(72)씨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소화기로 위협한 혐의도 제기됐다. 폭행 피해자 A씨는 얼굴 뼈가 부러지는 전치 4주 이상의 상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에는 노동청의 근로감독 결과 방씨를 포함한 택시기사들에게 지난해에만 임금 약 7천만 원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지난 15일 정씨에 대한 1심 재판 선고가 연기된 데 대해 양씨는 "검사가 양형에 영향을 미칠 이유로 정씨가 (방씨를) 폭행하는 영상을 법정에서 틀 것"이라며 "이런 면에서 볼 때는 (정씨를) 엄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히려 좋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해단식을 마치고 만난 민주노총 일반노조 한성영 사회서비스위원장은 "방영환 열사가 '택시 완전월급제와 공공제를 도입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우리는 그의 투쟁을 확산시키기 위해 시청으로, 국회로 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택시 노동자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알기 때문에 이 문제를 사회 구조적으로 바꿔야 한다"라며 "어려운 환경에서 동지들이 많이 연대해줬다. 그것이 참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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