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회장 빠진 회의…축협의 '보여주기식' 행정, 고통은 팬들 몫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류영주 기자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의 거취 문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하지만 정작 최종 결정권자는 자리를 비워 '보여주기식' 회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13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협회 소회의실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관련 경기인 출신 임원 회의를 진행했다. 이번 대회 준결승에서 탈락해 64년 만의 정상 탈환에 실패한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평가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회의에는 김정배 상근부회장, 장외룡, 이석재, 최영일 부회장,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 정해성 대회위원장, 이정민 심판위원장, 이임생 기술위원장, 황보관 기술본부장, 전한진 경영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협회에 따르면 이들은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결과와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여론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고, 별도의 브리핑은 없었다. 다만 협회 관계자는 "이번 주 내로 열릴 전력강회위원회가 있을 것이고, 최종적인 결정사항은 조속히 발표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초 협회는 이날 제5차 임원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인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불참함에 따라 경기인 출신 임원만 모여 자유 토론을 벌였다. 임원 회의는 올해 총 4번 열렸는데, 정 회장이 불참한 것은 이번 5차 회의가 처음이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류영주 기자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선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졌다. 최근 클린스만 감독의 퇴진 여론이 불거진 가운데 정 회장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 문제를 논의해야 하는 임원회의에 최종 결정권자인 정 회장이 불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사실상 실권이 없는 경기인 출신 임원들은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여부를 직접 결정할 수 없었다.

축구 팬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잔여 연봉 지급 문제가 걸림돌이 된다. 2026년까지 계약을 체결한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할 경우 60억 원이 넘는 위약금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 입장에서는 거액의 위약금 탓에 선뜻 경질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협회는 오는 15일 제1차 전력강화위원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클린스만 감독과 마이클 뮐러 위원장 외 위원 7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다만 지난 10일 거주지인 미국으로 출국한 클린스만 감독 외 일부 위원은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한다.

회의 종료 후에는 협회 측의 현장 브리핑이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정 회장이 침묵을 지키고 있어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 문제가 결정될지는 의문이다. 비난 여론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행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참패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이 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입국 뒤 인터뷰에서 사임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인천공항=박종민 기자
정 회장의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 한국은 다음달 21일(홈)과 26일(원정) 태국과 월드컵 2차 예선 3, 4차전을 연달아 치른다. 만약 협회가 사령탑을 교체한다면 늦어도 3월 A매치 기간(18~26일) 전까지는 모든 작업이 마무리돼야 한다

막대한 위약금을 지불하더라도 문제를 직시하고 바로 잡아야 퇴보를 막을 수 있다. 한국은 이미 64년 만의 아시안컵 정상에 오를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손흥민 등 한국 축구의 자산을 낭비하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클린스만 감독의 무능은 이미 증명됐다. 이번 대회 내내 선수들의 기량에만 의존하며 무색무취한 전술로 일관했다. 그 결과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3위인 한국은 준결승에서 64계단 아래인 87위 요르단을 상대로 유효 슈팅을 단 1개도 기록하지 못한 채 0-2로 참패했다.

게다가 무책임한 행동을 일삼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지휘봉을 맡길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준결승 탈락 후 "한국에 돌아가서 대회를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면서 "2년 반 뒤에는 북중미 월드컵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8일 귀국 후 다음주께 휴식 차 미국으로 떠난다고 밝힌 그는 대회 분석은커녕 돌연 이틀 만에 출국했다.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린 클린스만 감독이 북중미 월드컵까지 대표팀을 맡는다면 한국 축구는 겉잡을 수 없이 추락할 것이다. 협회는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팬들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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