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라이브즈'와 셀린 송 감독이 만든 '최초'의 기록은 남다르다. 데뷔작으로 단숨에 오스카 후보에 오른 셀린 송 감독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 한국적인 단어인 '인연'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영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셀린 송 감독의 영화는 그 어떤 언어로도 정의되지 못했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을 '인연'이라는 단어로 모아 새롭게 정의했다. 이에 전 세계 관객과 평단 역시 '패스트 라이브즈'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6일 오전 화상으로 만난 셀린 송 감독은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시작한 '패스트 라이브즈'가 어떻게 '인연'이란 단어를 담아내 전 세계 관객을 매료시켰는지 이야기를 전했다.
정말 믿기 어려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첫 영화 데뷔작으로 이런 결과를 얻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고,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다. 영화 개봉 후 전 세계를 다니며 느낀 점은, 한국에서 '인연'은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모른다. 그런데 이 영화를 통해 많은 관객이 '인연'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느끼고 사용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
▷ 영화의 주인공인 유태오와 그레타 리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두 배우가 내게 보낸 오디션 테이프를 본 후 만나고 싶어졌다. 서로 화상으로 만나 자신이 맡은 신을 읽어보고, 신에 관해 대화하는 시간을 3시간 정도 가졌다. 화상 미팅을 마친 후 두 사람이 내 영화의 배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 두 배우여야 했는지 많이 물어보는데, 내가 항상 생각하는 건, 캐스팅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다는 점이다. 그냥 느낌이 온다.
그리고 굉장히 중요했던 건 '패스트 라이브즈'는 어린아이와 어른의 모습이 공존해야 했다. 두 배우 모두 굉장히 전문적이고 어른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장난치고 웃을 때는 진짜 어린아이 같다. 그 모순적인 지점이 굉장히 중요했다.
▷ '패스트 라이브즈'는 자전적인 경험을 그린 작품이라고 들었다. 이러한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 개인의 이야기가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관객들과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닌 작업이라고 생각하나?
어느 날 밤 뉴욕에 있는 어느 바에서 어린 시절 한국 친구, 미국인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둘 사이 해석(통역)을 맡았는데, 언어와 문화만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개인적인 역사의 한 부분을 서로에게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있는 나의 두 부분을 서로 만나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과정이 마치 내가 과거와 현재, 미래와 같이 앉아 술을 마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개인적인 느낌, 지나가는 느낌일 뿐이지만 이걸 영화로 만들면 어떨지 생각했다. 거기서부터 영화가 시작됐다. 시작은 자전적인 이야기지만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배우들과 몇백 명의 스태프가 들어오면서 그 안에 있는 캐릭터들을 사랑하게 됐다. 자전적인 것에서 시작했지만, 영화는 로맨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언제, 어딘가, 누군가와 함께했던 두고 온 삶(past lives)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전생'(과거의 삶)이라 생각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다중우주를 넘나드는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평범한 인생도 여러 시공간을 지나가며 신기한 순간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수십 년의 시간과 두 대륙을 가로지르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한때는 어린아이였고 지금은 어른이 된 우리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 '인연'이란 소재가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난 한국에서 12년을 살았고,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인연'이라는 단어와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이 더 깊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연'이라는 단어를 몰라도 전 세계 관객이 이 단어를 배움으로써 자기 인생 안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그런 특별한 관계, 특별한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기 삶을 사랑할 수 있기에 사람들이 이 영화를 사랑해 주신다고 생각한다.
▷ '인연'이라는 단어가 영화 안에서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나?
바에 앉아서 내 친구와 남편 사이를 해석해 주고 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를 말할 수 있는 단어는 영어에 없었다. 남편과 나의 관계는 부부라고 할 수 있고, 나랑 친구는 친구지만, 그걸로 우리 모두의 관계를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내 남편과 친구는 무슨 관계일까? 서로의 관계가 영어에 있는 단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인연'이라는 단어가 필요했다.
인연은 굉장히 미스터리한 단어다. 셋이 '서로에게 서로는 누구인가?'라고 물어봤을 때, 그게 영화의 메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미국 영화니까 인연을 아는 관객은 한국계 미국인 밖에 없을 것이기에 영화에는 인연을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는 신이 있다. 그 신 덕분에 어느 나라 사람이든, 인연이란 단어를 알든 모르든 그 단어의 뜻을 알게 된다.
내가 인간으로서 느끼는 뭔가를 최대한 명확하게, 그리고 가장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한 십 년 가까이 연극을 했는데, 연극을 하면서도 항상 믿을 수 있었다. 내가 만약 솔직하고 진짜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면, 나와 대화해 줄 사람은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관객과 대화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느 날 어떤 사람과 술을 마시는데, 내 안에 과거랑 현재랑 미래가 한 방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특이하고 신기했는데, 당신도 그런 비슷한 걸 느낀 적이 있나? 이렇게 내가 관객에게 물었을 때 관객이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나도 그렇게 뭔가 내가 두고 온 삶(past lives)이 있다고, 그렇게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 있었다는 대답이 돌아온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