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유한 기업가의 이익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할까

[신간]체제 정당화의 심리학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촉구하는 태극기 집회.

왜 가난한 노동자가 부유한 기업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할까.

억압적 체제를 수용하고 옹호하려는 인간의 강력한 경향성을 25년간 연구한 존 T. 조스트 뉴욕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25년 전 '왜 가난한 사람이 부의 재분배에 반대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다양한 실험 연구를 거쳐 '인간의 체제 정당화 이론'을 입증한다.

조스트 교수는 인간이 되도록 사회에서 바람직하게 여기는 방식으로(관계적 욕구), 안정감을 느끼면서(실존적 욕구)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인식론적 욕구) 기존 사회 체제를 정당화·합리화하곤 한다며 불의한 체제의 정당화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단기적으로는 심리적 진통제 기능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체제를 공고화하고 그들의 심리적 안녕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우와 신 포도' 우화에서 여우는 닿을 수 없는 포도를 보면서 '저 포도는 실 거야'라고 가치를 절하한다. 만약 먹을 것이 레몬 밖에 없다면 여우는 레몬이라도 있어 다행이라며 달게 받을 것이다. 조스트 교수는 가질 수 없는 것은 가치 없게, 피할 수 없는 것은 가치 있게 여기는 이유가 끊임없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비참한 현실을 되새기는 괴로움을 계속 감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곧 체제 정당화 이론의 핵심이 된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경제 체제의 모순을 지적하는 대신 기존 정부를 비난하며 트럼프를 지지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성 가사 노동자들은 인종 관계가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대신 부유한 백인 고용주와 상생할 수 있어 행운이라 여긴다. 기후 위기 회의론자들은 기후 변화를 걱정하는 대신 그 증거를 부정한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정치성향, 성별과 성적 지향, 인종, 학벌, 연령에 따른 집단 권력 차의 효과에 대한 18개 가설과 검증 결과를 제시한다. 무력감이 체제 정당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한다.

2015년 연구에서 개인은 정치적 무력감을 느낄 때 정부를 더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연구에 따르면 보완적 고정 관념에 맞게 '가난하지만 행복한', 또는 '부유하지만 불행한' 인물에 대한 글을 읽은 참여자들이 '가난하고 불행한' '부유하고 행복한' 인물에 대한 글을 읽은 참여자들보다 체제 정당화 척도 점수가 높았다고 한다. 이는 '역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봤다.


에코리브로 제공


조스트 교수는 종교가 체제 정당화의 한 형태라고 봤다. 현실에 대한 만족과 감사를 강조하는 종교의 특성상, 체제 정당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실제 주류 종교를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체제 정당화가 높다고 분석했다.

여성에 대한 보완적 고정 관념도 젠더 권력 체제(예: 가부장제)를 정당화 한다. 흔한 보완적 고정 관념은 여성이 남성보다 따듯하고 도덕적이지만 무력하고 남성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온정적 성차별주의에 노출된 여성 실험 참여자들은 체제 정당화 척도 점수가 훨씬 높았으며, 외모에 더 신경을 쓰고 자기 대상화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체제 정당화의 심리학'은 왜 피지배 집단의 일부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최상의 이익과 객관적으로 반대되는 위치를 취하고 옹호하는지 설명한다. 경제적 불평등과 성·인종 차별, 기후 위기, 우리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덜 정의롭게 만드는 조건을 자주 용인하는 이유를 입증하고자 한다.

존 T. 조스트 지음 | 에코리브로 | 5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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