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공동묘지로 쫓겨난 이들…권익위 정식조사 착수

전북 김제시 성덕면 개미마을 주민들은 한동안 무덤 사이 여유 공간에 가마니와 거적 등으로 임시 거처를 마련해 피난민처럼 생활했다. 주민대표 김창수씨 제공

국민권익위원회가 약 50년 전 전북 김제시 금산면에 살던 주민들이 화전민으로 내몰려 공동묘지로 강제로 이주당한 사건에 대해 정식조사에 착수했다.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지만 관계기관 회의에선 "현행법상 보상 방안이 없다"는 한계가 반복됐다. 권익위는 개미마을의 사실과 타지역 사례 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지난 24일 오전 산림청, 전북자치도, 김제시, 오승경 김제시의원 등과 김제시 성덕면 개미마을을 현장답사하고 이날 오후 유관기관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 참석한 주민대표 김창수(79)씨는 "(당시) 김제군에서 주택을 짓기 위한 자제 등 필요한 것을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며 "트럭으로 주민들을 실어 개미마을 도로에 버렸다. 아무런 생계 대책도 제공되지 않았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피해 주민들은 현재 살고 있는 토지를 무상으로 앙여하고 주택 신축을 지원해 줄 것을 요구했다.
 
김제시의회 오승경 의원은 회의에 참석해 "시민들이 억울하게 강제 집행 당했던 사건"이라며 "국가적으로 산림청이나 전북도가 주민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산림청과 전북도가 모든 책임을 김제시에다가 일임하고 있다. 상급 기관인 산림청과 전북도는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적극적인 행정을 요구했다.
 
산림청과 김제시는 현실적 문제를 언급하며, 현행법상 주민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림청은 "검토한 바 현 상태에서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답했다. 김제시는 "공유재산법에 따라 무상으로 양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한계를 언급했다.
 
권익위 등은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한편, 합당한 보상 방안을 찾기 위해 김제의 모악동과 경기도 포천 등의 유사 사례를 알아볼 예정이다.
1976년 김제군 성덕면 공동묘지로 쫓겨난 금동마을 주민들이 흙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고 있다. 주민대표 김창수씨 제공

김제 공동묘지 강제 이주 사건은 지난 1976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 뒤 금동마을 32가구, 100여 명이 화전민으로 몰려 성덕면 공동묘지로 내쫓긴 일을 뜻한다.

정부는 화전정리법에 따라 △경사도 30도 이상 △도립공원인 금산사 경관 저해 등 이유를 들어 마을 철거를 강행했다.
 
당시 마을주민은 "마을의 역사가 100년이 넘고 뽕밭을 일구거나 약초를 재배하는 등 화전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무덤 사이에서 가마니로 움막을 짓고 살았으며, 생존을 위해 구걸도 해야 했다. 주민들은 공동묘지 위에서도 열심히 살아보자며 스스로를 '개미'라 부르며 개미마을을 일궜다. 20~30살의 나이에 움막 생활을 해야 했던 이들은 수십 년의 한과 설움을 간직한 채 아직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앞서 CBS노컷뉴스는 [왜 우리를 공동묘지로? …무덤과 동거, 짓밟힌 인권], ["땅 준다며 내쫓더니…" 임대료는 챙기면서 보상은 나 몰라라(?)], ['밀어붙이기식 화전정리', 행정도 '우왕좌왕'], ['화전정리사업'의 빛과 그림자… 우려가 현실로] 등 기사를 통해 '김제 공동묘지 강제 이주 사건'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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