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현안 해결이나 민원 청탁이라는 명목 없이 컨설팅 등 업무 대가로 돈을 받았다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지난달 28일 피고인 이모씨의 알선수재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본 원심을 파기환송했다고 21일 밝혔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이씨는 1975년 소위 임관 후 33년간 군 생활 끝에 2008년 소장으로 예편했다. 그는 2015~2016년 방위산업체 A사로부터 5594만원, 기능형 전투화 제조업체 B사로부터 1934만원을 자문 계약 대가로 받았다. 이씨는 계약 체결 이후 업체 현안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종의 대관 업무를 한 셈이다.
검찰은 이씨가 정상적 자문 계약이 아니라 군 관계자를 상대로 한 로비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보고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쟁점은 이씨가 방산업체를 위해 관청을 상대로 일정 업무를 하고 대가를 받기로 한 자문 및 컨설팅 계약을 알선수재 혐의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1·2심은 이씨가 업체와 맺은 계약을 모두 알선수재에 해당한다고 보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일부 계약이 알선수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구체적 현안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에 바탕을 둔 편의 제공 대가라면 통상의 노무 제공 행위로 알선수재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씨가 맺은 자문 계약 중 A사와 맺은 계약은 "경영일반에 관한 자문용역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알선수재죄의 판단 기준을 처음 제시한 대법원 판례다.
다만 B사와 맺은 계약은 알선수재 행위가 맞다고 봤다. B사는 "기능성 전투화 등 제품을 계속 군에 납품할 수 있도록 군 관계자를 만나 로비를 해달라"는 등 다소 구체적인 의뢰사항이 계약 과정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알선수재 이외에 수뢰후부정처사·뇌물공여 등 혐의로도 기소됐지만, 이 부분은 무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