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의 전제조건이자 기초적인 자구 약속을 지키지 않아 채권단과 정부의 전방위 비판을 받았던 태영그룹이 결국 약속했던 만큼의 자금 지원을 이행하며 한 발짝 물러났다.
워크아웃을 통한 채권단 차원의 금융 지원을 기대하면서도 자구 노력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하는 모양새다.
특히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도 사실상 미미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아직 워크아웃 개시를 낙관하긴 어렵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이르면 9일 발표될 그룹 차원의 추가 자구 약속 내용이 워크아웃 성사 여부를 결정짓는 중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코너 몰린 태영그룹, '논란의 890억 원' 태영건설에 뒤늦게 지원
태영그룹은 자구 노력 차원에서 태영건설에 지원하기로 채권단과 기존에 약속했던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잔여액 890억 원을 8일 지원 완료했다. 정부와 채권단의 지적에 못 이겨 워크아웃 개시 여부 결정을 사흘 앞두고서야 뒤늦게 태영건설에 잔금을 투입한 셈이다.
앞서 채권단과 정부는 태영그룹이 태영건설에 대한 대규모 금융 지원을 바라면서도 정작 자구 약속 이행엔 소홀한 이기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태영그룹의 행보를 두고 '자기 뼈 대신 남의 뼈를 깎는 노력'이라는 고강도 비판도 같은 맥락에서 제기됐다. 특히 태영그룹이 계열사인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상당액을 태영건설 대신 지주사 티와이홀딩스 살리기에 투입해 약속을 파기했다는 논란은 이런 비판의 주요 근거가 됐다.
애초 태영그룹은 해당 매각 대금 1549억 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겠다는 자구 약속을 내놨다. 이 금액은 윤세영 창업회장의 아들 윤석민 회장(416억 원)과 티와이홀딩스(1133억 원) 몫을 합친 것이다. 그러나 채권단과 당국은 이 가운데 890억 원이 태영건설에 직접 투입되지 않고 티와이홀딩스 연대 채무 상환에 쓰였기에 첫 약속조차 파기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태영그룹은 '연대 채무가 태영건설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에 사실상 지원이 이뤄진 셈'이라는 논리로 버텼지만,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오히려 태영그룹이 시급한 상황에서조차 이런 석연치 않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핵심 계열사인 SBS 최대주주이자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부터 지키려는 의도 아니냐는 물음표까지 제기됐다. 태영그룹의 행보를 "오너 일가 자구계획"으로 보는 채권단의 입장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직접 언급했던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채권단 "대주주, 부실 경영 책임져야"…태영 '추가 자구 약속'에 쏠린 눈
당국을 넘어 대통령실까지 나서 기존 자구 약속 이행을 촉구한 뒤에야 태영그룹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계열사 블루원 담보 제공과 매각, 에코비트 매각, 평택싸이로 담보 제공 등 나머지 기존 자구 약속에 대해서도 "조속히 실행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표면적으론 핵심 쟁점이었던 '890억 원 문제'가 해결되면서 워크아웃 개시의 청신호가 켜진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채권단 쪽에서는 아직 기본 약속이 이행됐을 뿐이며 태영 오너 일가의 적극적 사재 출연 등 한 발 나아간 추가 자구 약속이 나와야 한다는 불만 기류가 흐른다. 한 관계자는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채권단 설명회에서) 사재출연 계획을 채권단에 선제 제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구 약속은 비판에 못 이겨 내놓을 성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재 출연 문제는 그동안 물밑에서 채권단과 태영그룹 사이에 줄다리기가 이어졌던 사안이다. 당초 채권단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가운데 윤세영 창업회장의 딸 윤재연 블루원 대표 몫인 513억 원까지 합쳐 총 2062억 원을 태영건설에 직접 투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태영그룹은 '김 대표는 태영건설 경영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거부한 것으로 파악됐다.
윤석민 회장 몫의 매각 대금 416억 원은 태영건설에 지원돼 사재 출연에 해당한다는 게 태영그룹의 입장이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티와이홀딩스가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윤 회장 몫을 빌린 뒤 태영건설에 투입한 형식이어서 사재 출연으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티와이홀딩스는 또 '890억 원 약속 이행'을 위한 자금 조달 과정에서 윤재연 대표에게 SBS주식 117만2천주를 담보로 제공하고 330억 원을 6개월 단기 차입하기도 했는데, '대여 행위'를 사재 출연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마찬가지로 제기됐다.
이를 감안하면 실질적 사재 출연 규모는 68억 원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존재하는 가운데 채권단은 "대주주가 부실 경영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취지의 추가 요구를 태영그룹 쪽에 강조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 당국 수장들도 이날 오전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열어 "(태영그룹이) 충분하고 구체적인 추가 자구안 제시 등을 통해 채권단의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다는 점에 견해를 같이 했다"고 힘을 실었다.
이에 따라 이르면 9일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태영그룹의 추가 자구 약속에는 오너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그룹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의 지분을 담보로 제공하는 방안, 추가 사재 출연 방안 등이 담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BS 지분 담보 제공 방안이 포함될지도 주요 관심사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개시 여부는 오는 11일 1차 금융채권자협의회에서 결정되는 만큼, 추가 자구 약속과 이행 과정은 협의회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