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기업구조 개선작업) 개시를 설득하기 위한 태영건설의 채권단 대상 설명회에선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직접 참석해 "도와 달라"고 호소문까지 발표했지만, 정작 약속된 자체 정상화 방안(자구안)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 채권단 쪽에서 나왔다.
특히 관심을 모았던 오너 일가의 대규모 사재 출연, 핵심 계열사 SBS 지분 매각 여부에 대한 확답도 이뤄지지 않으면서 자체 정상화 의지를 둘러싼 물음표는 더욱 커지는 기류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강석훈 회장조차 "이 자구안으로 채권단의 동의를 기대하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 워크아웃 불발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세영 회장 "간곡히 도움 요청"…태영건설, 자구 노력 설명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3일 열린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설명회에선 윤 창업회장이 채권단 400여 곳 관계자 수백 명을 상대로 호소문을 발표했다. 워크아웃 개시를 위해선 채권단 75%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만큼 직접 나선 것이다. 그는 "자기 관리에 소홀한 탓에 뼈아픈 부도 위기를 몰고 왔다. 저를 비롯한 경영진의 실책이다.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라며 "간곡히 도움을 요청 드린다.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 해 태영과 함께 해 온 많은 분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도록 같이 살 수 있는 길을 찾게 도와 달라"고 했다.
윤 창업회장은 부실 우려 부채 규모가 알려진 것보다 작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일부 언론보도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규모가 9조 원이라고 나왔지만 실제 문제가 되는 우발채무(떠안게 될 수 있는 빚)는 2조 5천억 원 정도"라며 향후 3년 동안 연 3조 원 이상의 매출이 예상된다는 점을 들어 "태영건설은 가능성 있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태영건설은 전체 우발채무 규모는 9조 5천억 원이지만, 부동산 사업 초기에 투입되는 고위험 PF대출인 브릿지론 보증과 분양률 75% 미만인 우려 사업장에 투입된 PF대출 보증에 따른 우발채무는 2조 5천억 원 규모라고 부연 설명했다.
태영그룹은 워크아웃의 전제 조건이자 채권단 설득을 위한 핵심 사안인 자구 노력안도 이날 공개했다. 계열사 태영인더스트리 매각해 마련한 돈 1549억 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고, 또 다른 계열사인 종합환경업체 에코비트 매각도 추진해 매각 대금을 태영건설에 투입하겠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레저사업체인 계열사 블루원의 지분을 담보로 추가 자금을 확보하고, 매각도 추진하는 한편 양곡·화물 사업 계열사인 평택싸이로 지분 62.5% 역시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태영, 첫 약속도 안 지켜…간곡함 반영된 자구안 제출해야"
표면적으론 계열사 처분 계획에 눈물의 호소가 더해진 발표였지만, 공개된 자구안은 태영건설이 워크아웃 신청 초기부터 산업은행과 협의해 온 내용으로서 사실상 채권단과의 첫 약속임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설명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태영 측에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1549억 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겠다는 첫 번째 약속을 지키지 않고 400억 원만 지원했다"며 "블루원 지분 담보 제공과 매각 추진 건도 이에 따른 자금을 태영건설에 사용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말을 바꿔 (태영건설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 채무를 갚는데 사용하겠다고 한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어제 제가 태영 회장 측을 직접 만나서 원래 약속했던 4가지를 지켜줄 것을 촉구하며 그에 대한 확약을 오늘 설명회에서 공표해주기를 요청했다"며 "(그러나) 오늘 결과는 구체적인 자구안을 제시하지 않고 단지 그냥 '열심히 하겠으니 도와 달라'고 하는 취지로만 말씀을 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채권단 75%가 이런 제안에 동의한다고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윤 회장이 호소문에서 언급한) 간곡함이 있다면 거기에 상응되게 자구계획안을 제출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계열사 매각 등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위기의 태영건설에 온전히 투입하지 않고 지주사 채무 상환에 쓰는 상황은 '그룹조차 태영건설 정상화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으로 이어진다는 시장 일각의 시각과도 일맥상통하는 비판이다. 태영그룹 관계자는 태영건설 채무가 연대보증을 섰던 지주사 티와이홀딩스에 넘어와 이를 상환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태영건설로부터 초래된 채무를 갚은 셈이라는 취지의 논리를 폈다.
SBS 지분 매각·오너 일가 사재출연 확답도 없어…워크아웃 불발 우려
특히 이번 설명회에선 협의 중이던 자구안에 더해 핵심 계열사 SBS 지분 매각, 오너 일가의 대규모 사재 출연 등 채권단 신뢰 확보 차원의 고강도 추가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 받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확답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설명회에 참석한 이들 사이에서도 "채권자들 입장에선 손실이 뻔해서 사재출연이 대규모로 이뤄진다고 해도 만족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응이 이러면 워크아웃에 동의를 하겠느냐"는 쓴소리가 나왔다.
양윤석 티와이홀딩스 전무는 채권단 설명회 직후 언론 브리핑에서 SBS 지분 매각 가능성과 관련해 "채권단이 말씀을 주시면 충분히 검토하겠다"면서도 "매각에는 방송법상 제약이 많다"고 말해 사실상 선을 그은 것으로 풀이됐다. 양 전무는 오너 일가 사재 출연에 대해선 "충분히 필요성 인식하고 있으며 준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가운데 오너 측 몫이 태영건설 지원에 투입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부인하진 않겠다"고만 했다.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1차 금융채권자협의회는 오는 11일로 열린다. 채권단의 분위기가 냉랭한 만큼 이 때까지 태영그룹 차원의 추가 대책이 나올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처럼 자구 의지를 둘러싼 논란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경우 워크아웃 불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미 밝힌 자구안도 잘 안 지켜지면 향후에도 그럴 것이라는 의심에 전반적인 신뢰가 훼손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만약 워크아웃이 불발돼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될 경우 협력업체 공사대금 등 상거래채권을 포함한 모든 채권이 동결돼 협력업체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