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적자만 45조원에 달하는 한국전력이 위기에 처한 가운데 김동철 한전 사장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가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두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 정부는 오는 4월 총선 전까지 사실상 전기요금 동결을 선언했지만, 전기요금 '역마진 구조'로 인해 한전의 적자 폭이 갈수록 늘면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국내 전력 독점 공기업인 한전의 사장과 에너지 주무부처인 산업부의 장관 후보자가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이견을 표출했다. '총부채 200조원'의 한전은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산업부는 총선 전까지 공공요금 동결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분위기다.
안 후보자는 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전기요금 인상 여부에 "국민 부담과 환율 등을 감안해 단계적 요금 정상화를 고려할 것"이라며 사실상 동결을 시사했다. 앞서 서면질의 답변서에도 "궁극적으론 전기요금 현실화가 필요하지만 한전의 재무 상황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가 전기요금 조정 여부와 수준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반면 김 사장은 신년사에서 요금 정상화, 다시 말해 요금 인상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사장은 지난 2일 신년사에서 "원가를 반영하는 합리적 전기요금 제도 정착이 중요하다"며 "반드시 요금 정상화를 이뤄낼 것"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두 조직의 수장들은 이견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김 사장은 4분기 전기요금 인상안 발표를 앞두고 "한전 정상화를 위한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방문규 산업장관은 한전의 선(先)재무개선‧후(後)요금인상 기조를 유지하며 "관계 기관들과 계속 협의 중"이라고만 했다.
우리나라는 전력 생산을 공기업인 한전이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전기요금 결정권은 사실상 대통령 의중에 달렸다. 절차적으론 매 분기마다 한전이 요금 인상안을 제시하고, 산업부와 전기위원회 등 승인을 거쳐 확정되지만 실질적인 결정 구조는 다른 셈이다.
한전 사장과 산업부 장관 등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통상 산업부 장관과 한전 사장 간 의견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한전이 천문학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터라 김 시장 입장에선 '한전 정상화'에 무게를 뒀지만, 여당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산업부 장관들은 다소 결이 다른 반응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전기요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은 한전의 적자에서 비롯됐다. 한전은 지난 2021년 5조8천억원, 2022년 32조6천억원 손실을 기록했다. 현 정부 들어 전기요금을 40%가량 올렸지만, 여전히 '역마진 구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지난해 약 6조원의 추가 적자가 예상됐다.
다만 지난해 연말 직전 한전이 자회사들로부터 3조2천억원 상당의 중간배당을 받는 데 성공하면서 지난해 적자는 3조원대로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전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까지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발행 한도를 약 90조원까지 확보한 상태다.
업계 내에선 에너지 원자재 가격의 등락에 따라 소매 요금도 움직이도록 하는 '원가주의' 관철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2022년 말 산업부는 한전의 누적 적자 해소하기 위해 2023년 한 해 동안 요금을 kWh(킬로와트시)당 51.6원 인상해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론 21.1원 인상에 그쳤다. 지난해 4분기에는 산업용 전기만 6.9% 인상 후, 올해 1분기는 동결했다.
전문가들은 도매 전력구입비보다 소매 전기요금이 더 낮은, 역마진 구조가 지속되는 한 한전의 재무 위기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스라엘 전쟁과 홍해 사태 등 돌발 사태로 국제 정세가 흔들리는 때문에 '빚'으로 연명하는 현재와 같은 방식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한전의 누적 적자 해소를 위해선 전기요금 인상을 불가피한데, 아마 총선 전까지는 동결하고 선거 이후 인상에 나설 것 같다"고 했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국제 에너지 가격의 상승이 한전 적자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에, 요금 현실화가 해법"이라고 말했다.